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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시준]8·15광복, 남이 준 것 아니다

입력 | 2013-08-15 03:00:00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 이를 8·15광복이라고 한다. 8월 15일 광복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지 않다. 대학생들에게 물어봐도, 교사나 일반인들에게 물어봐도, 광복을 찾은 것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국민 대부분이 광복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을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합국의 승리=일제의 패망=한국의 광복’이라는 도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연합국이 일제를 패망시켰고, 그 결과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힘으로 일제를 패망시키지 못하였다는 생각, 그리고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우리 민족 혼자 힘으로 일제를 패망시킬 수 있었을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일제는 조그만 섬나라가 아니었다. 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일제는 1931년에는 만주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중국을 침략하였고, 이어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버마 등 동남아시아 일대를 장악한 강대국이었다. 더 나아가 1941년에는 미국을 침략했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우리의 힘만으로 일제를 패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한 적을 상대로 싸울 때는 전략이 필요하다. 독립운동에도 전략이 있었다. 한반도를 차지한 일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세력 팽창을 할 것이고, 세력을 팽창하게 되면 중국·미국 등과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러한 예견하에 우리 민족으로 구성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가 일제가 중국·미국 등과 전쟁을 벌일 때, 우리도 그들과 함께 일제와 전쟁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이었다. 독립군과 광복군을 조직하여 중국군과 함께, 인도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미국의 전략첩보부대인 OSS와 함께 국내 진입 작전을 추진한 것이 그러한 전략이었다.

연합국이 일제와 싸운 것은 한국을 광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제와 싸웠듯이, 연합국들도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였지만 중국은 일제와 싸우지 않았다.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하자, 그때부터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일제와 싸웠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941년 12월 일제가 하와이 진주만을 선제공격하자 그때부터 일제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한국도 연합국도 모두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다.

일제가 패망한 것은 침략을 받은 나라들이 함께 싸워 거둔 성과였다. 문제는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것이 그것이었다.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것은 한국이 일제와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영국이 자신의 식민지 인도 때문에 임시정부를 승인할 수 없었던 것처럼 자신들의 국익 때문이었다. 수만 명의 청년을 희생시켜 가며 얻은 대가, 즉 일제와 싸워 얻은 전리품을 차지하려는 이해관계도 있었다.

광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우리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광복은 주어진 것이 된다. 그러나 연합국이 인정하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은 일제가 침략할 때부터 패망할 때까지 일제와 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면 광복은 찾은 것이 된다.

한국인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은 역사적 사실이다. 천안에 건립된 독립기념관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고 있기도 하다. 광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일제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는 한국 민족의 자존심, 5000년 가까운 역사를 유지해 온 민족으로서 망할 수 없다는 역사적 자부심, 그리고 50여 년 동안 온 민족이 나서서 끊임없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결과였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