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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기사회생 개성공단, 남북관계 전면복원 계기로

입력 | 2013-08-15 03:00:00


말 그대로 기사회생(起死回生)이다. 남북이 어제 7차 실무회담에서 극적으로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개성공단을 달러박스로 부르는 것은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북이 일방적으로 공단 가동을 중단한 지 넉 달 만이다.

합의 과정에서 남북 양측은 조금씩 양보했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주장했으나 합의문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선에서 타협했다. 북한 역시 ‘불순한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을 하지 말라’는 대남(對南) 요구를 거둬들였다.

가장 중요한 재발 방지와 관련해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합의 문구는 북한이 다시는 일방적으로 공단 가동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개성공단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것도 고무적이다. 남북은 개성공단 기업들에 국제적 수준의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외국 기업의 유치도 장려키로 했다. 외국 기업이 들어오면 공단의 안정성도 커질 것이고, 공단 제품이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된다면 수출 판로도 넓힐 수 있다. 남한 기업과 노동 집약적인 산업에만 의존해서는 개성공단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합의문서보다 중요한 것이 합의 이행이다. 만약 북한이 또다시 일방적으로 공단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입지도 좁아져 또다시 협상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가동 10년을 넘긴 개성공단을 질적·양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남북 모두 합의정신에 입각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남북이 만들기로 합의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잘 활용해 작은 갈등이 큰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사전 위기관리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합의가 이뤄진 후 “앞으로 남북관계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더불어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노력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단 폐쇄라는 배수진을 치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낸 박 대통령으로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의 단초를 연 셈이다.

문제는 북한의 향후 태도다. 북한은 이번 개성공단 실무협상에서 후반부로 올수록 타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원칙을 버리고 북한에 머리를 숙이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개성공단 재개 합의를 남북관계 전면 복원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은 6월에 열기로 합의했으나 수석대표의 격(格) 문제로 무산된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재개 문제를 신속히 논의해야 한다. 이미 진행 중인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면서 당국 간 회담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처럼 합의가 가능한 문제부터 차분히 논의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개성공단 재개 합의는 남북 간에 통용되던 기존의 협상 관행을 바꿨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늦는 게 빠른 길이라는 말이 있듯 우여곡절을 겪긴 했으나 그만큼 합의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이번 협상 경험을 잘 살려 남북 양쪽이 신뢰와 호혜의 정신으로 각종 현안을 풀어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