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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빠듯한데 고소득층까지 양육수당 지원해야 하나”

입력 | 2013-08-15 03:00:00

[세제개편안 후폭풍]전문가들 “일부 공약 축소-폐기해야”




세법개정안이 수정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일부 복지 공약의 수정·축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로 대규모 예산이 투입돼야 하거나 고소득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 공약들이 도마에 오른다. 이 밖에 경제성이 떨어지는 대형 지역공약, 정책목표가 상충하거나 추진과정에서 부작용이 우려되는 일부 공약도 ‘구조조성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 공약들은 박근혜 정부가 5월 공개한 공약가계부의 ‘경제부흥’ ‘국민행복’ 항목에 주로 몰려 있다. 대개 연간 ‘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초대형 공약들이다.

○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약들

전문가들은 우선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계층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은 우선적으로 축소하거나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나라 재정 여건이 고소득자에게까지 ‘용돈’을 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것이다.

0∼5세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보육료 또는 양육수당을 지급한다는 공약이 대표적 사례다. 5년간 5조3000억 원이 들어가는 이 공약은 모든 국민의 영유아 보육을 국가가 완전히 책임진다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고소득층에게 줄 보육비를 아껴서 저소득층에게 더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사회정의에 맞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지순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정부가 돌봐야 하겠지만 부자나 자기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사람까지 정부가 도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무리한 복지 확대는 결국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값 등록금 지원 공약(5년간 5조2000억 원 소요)도 청년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실업난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낮은 학비가 고졸자들의 대학 진학을 더 부추기면서 대졸자가 학력에 걸맞은 직업을 못 찾는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 현상을 더 악화시킨다는 우려다.

이 밖에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노인 임플란트 급여화 등 현 정부의 대표적 의료 공약들도 그간 일부 내용이 수정되긴 했지만 아직도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보편적 복지 공약들에 대한 소득계층별 혜택을 추산한 결과 저소득층 못지않게 중산층 및 고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몰리는 등 소득 재분배 효과는 기대만큼 높게 나타나지 않았다. 또 갖가지 ‘무상’ 복지가 많을수록 국민의 근로의욕이 떨어져 고용과 국내총생산(GDP)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내놓은 모든 복지정책을 실행할 경우 형평성에 기여하는 부분은 적으면서 고용과 성장률에는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경제성 없는 지역공약도 수술대에 올라야”

대규모 도로, 철도 건설 사업 등이 대부분인 지역공약들도 상당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지역공약 이행에 대한 지자체들의 압박에 “경제성이 없어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가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안기면서까지 민원성 공약들의 추진을 강행한다면 나라살림에 결국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대선 지역공약 중 철도와 도로 건설사업은 26개에 이른다. 이 중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받은 10개 사업 모두 ‘비용에 비해 편익이 떨어져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애초 대선 공약이 아니었다면 정부 차원에서는 검토될 여지조차 없었던 사업들인 셈이다. 국토부 당국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대선 공약까지 넘어가지 않는다”며 “통상 경제성이 떨어지는 ‘숙원사업’이 공약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사업성이 낮았던 사업은 1조4084억 원이 드는 한려대교 건설로 2006년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11에 불과했다. 이처럼 ‘낙제점’을 받고도 재추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경북과 강원을 잇는 영덕∼삼척 고속도로 신설(0.21·총 사업비 4조678억 원), 춘천∼속초 고속화철도(0.67·총 사업비 3조2650억 원) 등도 경제성이 낮은 지역공약으로 꼽힌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경제대학원)는 “양양공항이나 무안공항처럼 사용자도 없이 방치되는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라면 차라리 지역주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며 “무조건 공약을 실천하기보다 타당성 재평가 등을 통해 경제성을 다시 한 번 따져보고 추진할 사업을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 전직 관료는 “정부나 여당 모두 대통령 한 명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라며 “복지든 지역공약이든 지금 재정 형편에 추진하지 못하는 사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송충현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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