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예보기술분석과 직원들이 사무실 벽 한쪽에 붙여 놓은 장마기간 일기도를 들여다보며 장마 종료 시기를 분석하고 있다. 분석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매일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8시경까지 근무한다. 점심시간은 30분을 넘지 않고 저녁은 퇴근 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32도와 33도 사이
기상청 1층 로비의 온도계는 섭씨 32도를 나타냈지만 이곳은 25도. 꽤 시원하다. 이곳 온도가 26도를 웃돌면 국가기상센터의 수많은 장비들이 다운될 수 있다. 이는 곧 재앙이다. 기상청 전체에서 가장 시원한 곳에 모였지만 시원함보다는 긴장감이 두드러졌다.
인희진 예보관이 먼저 나섰다. “저는 내일(13일) 예보에서 최고기온을 오늘 수준인 33도(서울 기준)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각 반론이 쏟아졌다. “새벽에 5.5km 상공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 예보보다 기온을 1도 내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 예보관은 “1.5km 상공에서는 내일 아침 기온이 오늘과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5.5km 상공의 찬 공기 영향은 제한적입니다”라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예보를 발표할 때는 기상학적 분석뿐 아니라 예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편익이나 비용도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 한전에서 예비전력량이 2%대까지 떨어졌다고 하던데요. 이럴 땐 예보가 1도만 조정돼도 관련 기관들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죠.”
인 예보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요즘 같을 때 최고기온이 32도와 33도 사이로 예상되면 높은 숫자를 택한다”고 귀띔했다. 국민과 기업, 기관 등이 전력난에 좀 더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온이 1도 오르면 전력사용량은 150만 kW 늘어난다.
매일 국민 앞에 서다
김 팀장은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기자들의 전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국민 심판대’ 앞에 선다. 판결에 걸리는 시간은 딱 하루다.
요즘 더위가 최고 이슈여서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김 팀장은 “국민 앞에 서는 것이므로 무조건 쉽게 풀어 설명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10초짜리 방송을 녹화하는 데 15∼20분씩 걸리기도 한다. 끊임없이 울리던 언론의 전화가 오후 5시가 되자 잠잠해졌다. 갑자기 독서실처럼 조용해졌다. 세 사람은 책상에 앉아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론 대응 업무가 끝나고 ‘분석 업무’가 시작됐다.
김 팀장은 컴퓨터 화면과 책상에 10장이 넘는 일기도를 깔아 놓았다. 올해 장마가 정확히 언제 끝났는지 분석하는 중이었다.
“특히 올해는 장마 기간이 역대 가장 길었던 탓에 기상학적으로 정확한 종료 날짜를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해요. 내년 이후 장마 때 참고가 되니까요.”
올해 장마 종료일을 확정하는 데 2주 걸렸다. 기상청의 전체 부서가 의견과 자료를 주고받으며 논의해야 하는 일이다.
박 예보관은 영어로 된 논문을 옆에 놓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해양기상 서비스의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기상청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박 예보관은 올해 6월 말 수협 연구원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야심 찬 연구는 긴 장마와 기록적 폭염 탓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위험기상예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연구를 맡은 최 예보관은 “장마가 시작되고 난 후로는 기상예보 분석과 방송 녹화를 하느라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래 언론 대응을 하지 않았던 그는 유별났던 올해 장마와 폭염 때문에 7월부터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숙제는 늘 많다. 그중 하나는 실패 분석이다. 사무실 벽에 걸린 칠판에는 ‘7월 7일자, 15일자, 22일자 빗나간 예보 다시 분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보관들은 종종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가끔은 하늘이 무심하다
5개 지방기상청과 전국 45개 기상대, 항공기상청이나 국가태풍센터 등 산하기관 사이에 오가는 한 줄짜리 보고나 간단한 논의는 기상청 전용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이날도 메신저를 통해 9개 시군의 폭염특보가 새로 내려지거나 조정됐다.
오후 7시 반이 되자 국가기상센터로 예보관 10여 명이 들어왔다. 8시에 교대할 야간 근무자들이다. 김태수 통보관이 방금 출근한 교대 근무자들을 뒤에 세워 놓고 주간 예보 모니터 앞에 섰다.
“우리 예보장(슈퍼컴퓨터 분석 결과)을 보니까 북쪽에서 토요일쯤 찬 기압골이 접근하는데, 이러면 일요일(18일) 아침 기온이 조금 더 낮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일요일 오후엔 비도 오겠는데….”
이날 저녁 발표된 18일 아침 기온은 26도. 예보 조정 여부에 따라 열대야 예보도 해야 한다. 1도를 수정할지 말지를 놓고 30여 분간 논의가 이어졌다.
10여 장의 일기도와 수십 장의 위성사진, 그 외에도 30여 가지 참고 자료에다 슈퍼컴퓨터 분석 결과까지 참고했다. 하지만 이상 기후가 많아지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비구름이 생기거나 폭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땐 하늘이 무심하다.
경제학자는 틀려도 되지만…
예보기술분석과에는 김 팀장 혼자 남았다. 매일 14시간씩 일하면서도 싫은 기색이 없다. 대학에서 대기기상학과를 택한 건 우연이었지만 지금은 운명이라고 느낀다. 그는 공군 기상장교로 근무하던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경험했다. 공항 기상대와 관제탑을 오가며 세계 정상들이 탄 비행기가 안전하게 내리는 데 일조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기상업무 외에는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예보관들의 직업병은 치아질환.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와 잇몸이 성한 사람이 드물다. 기상청의 총괄예보관 4명 가운데 3명이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이들의 스트레스는 365일, 24시간 동안 계속된다.
“야간 근무 때 예보를 발표한 뒤 아침 퇴근길에는 하늘만 쳐다보고 집에 갑니다. 예보가 틀리면 퇴근해서도 잠을 못 자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컴퓨터를 켜 놓고 계속 현황판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왜 틀렸는지 분석하게 됩니다.”(김 팀장)
“현재 기상관측 기술로는 태풍 예보에 약 200km 정도의 오차가 생깁니다. 우리 국토의 동서 폭이 200km 정도죠. 태풍이 서해로 올라온다고 예보했는데 동해로 올라올 수 있다는 거죠.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인 예보관)
기상청에서 드물게 아직은 이가 멀쩡한 김 팀장. 오후 9시가 넘었지만 수십 장의 일기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해가 넘어간 지 꽤 됐지만 공기는 여전히 뜨겁다. 1층 로비 전광판은 서울 현재 기온을 29.2도로 나타냈다.
이날 기상청은 예보 6건, 특보 1건, 기상정보 3건을 발표했다. 밀양이 38.1도까지 오르는 등 15개 지역에서 올해 최고기온을 갈아 치웠다. 9개 시군에 폭염특보를 새로 발령하거나 조정했다. 박경희 예보관의 ‘서울 최고기온 33도’ 예보는 맞았을까. 다음 날인 13일 오후 4시 7분에 기록된 서울 최고기온은 32.9도였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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