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항일운동가들 사연 주고받은 1910년대 우편엽서 처음으로 공개“자주독립 상징… 재외동포 염원 담겨”
독립운동가 김호의 소장품에서 발견된 1910년경 옛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우편엽서. 엽서 아래 ‘미국 와싱톤 대한 뎨국 공사관’이라고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다. 태극기는 한눈에도 합성임을 알 수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지난해 102년 만에 되찾은 옛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미국 내 한인들 사이에서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1910년대 우편엽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14일 “독립운동가 김호(1884∼1968)의 외손자인 안형주 선생(76)이 보관하던 기록물에서 ‘미국 와싱톤 대한뎨국 공사관’ 엽서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간 태극기가 그려진 주미공사관 사진은 당시 공사관의 모습을 담은 대표적 유물로 꼽히면서도 그 출처와 의도가 명확하지 않았다. 왜 이런 합성사진을 만들었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후대에 누가 장난삼아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이 엽서가 일회성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안창호와 서재필 유물에서도 같은 엽서가 나온 것. 그런데 똑같이 태극기가 합성된 앞면 사진과 달리 뒷면 디자인은 엽서마다 조금씩 달랐다. 여러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작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도형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사관 사진이 담긴 우편엽서를 주고받았다는 것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라며 “당시 재미 독립운동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어색해 보이는 합성 태극기는 당시로서는 뜨거운 결의를 담은 강력한 메시지였다. 엽서를 만든 시점은 이미 일제가 나라를 빼앗고 공사관도 강제로 단돈 5달러에 팔아넘긴 뒤였다. 태극기를 게양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재미동포에게 공사관은 조국이 자주독립 외교를 떨치던 상징이었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활용홍보팀장은 “서투른 솜씨지만 큼지막한 태극기를 새겨 다시 공사관과 조국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단은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통해 신청하는 일반인 1000명에게 엽서 복제품을 무료로 배포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