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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女, 성폭행당해 낳은 4개월된 아들 살해

입력 | 2013-08-15 03:00:00

“비참한 삶 살게 될까 두려웠다”




지난해 3월 16일 A 씨(22·여)는 인터넷 게임을 하다 알게 된 홍모 씨(25)를 경기 수원의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났다. A 씨는 이날 홍 씨가 ‘술을 마시자’는 제안에 응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을 당한 지 4개월 뒤인 지난해 7월에야 임신한 걸 알게 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인 A 씨는 생리가 멈추면 임신한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성폭행으로 생긴 원치 않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낙태 비용 200만 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홍 씨는 “돈이 없다”고 발뺌을 했고 결국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 씨는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2011년 어머니(당시 54세)가 암으로 숨진 뒤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찜질방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집을 나간 아버지(52)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아버지는 단칼에 도움을 거절했다. 결국 낙태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낙태시기를 놓쳤다. 지난해 12월 지인의 소개로 광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아들을 낳았다. 돈이 없었지만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 입양시킬 경우 출산비는 무료’였다.

A 씨는 갓 태어난 아기를 전남 나주의 한 영아보호소에 맡겼다. A 씨는 광주의 한 커피숍에 취업해 돈을 모았다. 전셋집 얻을 돈을 마련해 아기를 데려오고 싶었다. 올 4월 23일 낮 12시 영아보호소에서 아들을 잠시 데리고 나와 광주 서구 농성동 지인의 집에서 하루를 함께 지냈다.

그녀는 다음 날인 24일 오전 6시 눈을 떴다. 잠을 자고 있는 아기 얼굴을 보니 기가 막혔다. 오전 7시 반 A 씨는 아기의 코와 입을 손과 손수건으로 막았다. A 씨는 범행 당시 심정을 “아기를 바라보다 ‘나도 부모에게 사실상 버림받고 살았는데, 이 아이는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낙태도 돈이 없어 못하는 바람에 태어났다. 얘는 나보다 더 비참하게 버림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아기를 죽이고 나도 자살하려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 씨가 엄마가 숨진 뒤 6개월간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는 경찰에서 “아기의 코와 입을 막았지만 곧 아기의 눈을 보고 힘을 줬던 손을 풀었다. 아기를 그냥 두고 거실 청소를 한 뒤 다시 아기를 살펴봤는데 숨을 쉬지 않았다. 급히 119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범행 직후 조사에서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재웠는데 아침에 깨 보니 숨져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 결과 아기의 뱃속에 음식물이 없었고 질식사한 사실을 확인한 뒤 추적 끝에 13일 충남 천안에서 A 씨를 붙잡았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14일 살인 혐의로 A 씨를 구속했다. A 씨는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 주고 싶었는데 한순간 잘못된 생각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고 직후 충남 천안으로 달아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20대 회사원와 동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임신(8주)했다. A 씨는 “이번에 아이를 낳으면 꼭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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