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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든 우익들 “조선인 죽여라”… 폭염에도 아이 손잡고 100m 대기

입력 | 2013-08-16 03:00:00

■ ‘日우익 해방구’로 변한 야스쿠니신사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의 군복을 입은 군인, 포탄에 맞은 듯 구멍이 숭숭 뚫린 욱일기(아시아 침략전쟁 때 썼던 일본군 깃발), ‘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고 적힌 깃발….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로 부르는 15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구단시타(九段下)의 야스쿠니신사는 우익들의 해방구로 변했다.

이날 오전 6시 신사의 신문(神門·정문)이 열리자마자 참배객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주로 히로시마(廣島) 오사카(大阪) 등 지방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단체로 참배 온 사람들이었다. 오전 7시부터는 출근길에 참배하러 들른 회사원들인 넥타이 부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현장에 있던 일본 기자는 “이전에 볼 수 없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오전 8시를 앞두고 신사 주변에서는 욱일기와 일장기를 든 우익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조선인 돌아가라, 조센진 죽여라”라고 외치며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러 온다는 소식에 몰려온 것이다. 옆에 있던 한 일본인은 기자의 말이 한국말인 것을 알고 “우익들이 한국인을 잡으러 돌아다니고 있다. 조심하라”고 걱정스럽게 충고했다.

오전 8시경 일반인이 참배하는 배전(拜殿) 오른쪽 귀빈용 출입구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이 연미복 차림으로 나타난 것. 그는 참배 후 기자들에게 “개인적인 참배로 외교에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한 우익단체가 옛 일본군 군복을 입은 채 찢어진 욱일기와 소총, 칼을 들고 행진했다. 욱일기 하단에는 ‘보병 제7연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치스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를 어깨에 새긴 제복을 입은 우익 무리도 보였다.

참배객들에게 한국 기자라고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부분 “할 말 없다”며 냉담하게 돌아섰다. 군복을 입은 우익에게 말을 걸자 그는 “한국과 북한이 자극한 덕분에 일본 정신이 부활했다”며 “지금부터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찜통더위에도 참배 순서를 기다리는 10열의 참배객 줄이 100m 이상 길어졌다. 60, 70대 노인뿐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의 손을 잡고 온 가족, 20대 연인 등도 보였다. 대학생 단체 참배객도 눈에 띄었다. 일본 거주 25년이라는 미국인 제임스 씨(50)는 “매년 살아있는 역사공부를 위해 야스쿠니신사에 오는데 이번처럼 젊은층이 많은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날 정오 사이렌이 울리면서 일순 사방이 고요해졌다. 참배객들의 일제 묵념이 끝나자 인근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추도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참배객들의 표정은 다시 비장해졌다.

이날 신사에서 만난 재일교포 3세는 “평범한 참배객들이 왜곡된 민족주의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하루였다”고 말했다. 혐한(嫌韓) 시위에 반대 운동을 해온 그는 이날 분위기를 보겠다며 처음 신사를 찾았다.

도쿄=박형준·배극인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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