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기부금 쌈짓돈처럼 사용 드러나류 前총장, 차명계좌로 2000만원 받아
유니세프(UNICEF)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올해 초 한 민간단체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해 해임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아동 생존 및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1994년 한국이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뀌면서 출범한 사단법인이다. 현 회장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이다. 지난해 기업과 민간단체, 일반 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금액이 945억 원, 정기 후원자 수는 32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개인비리로 고위 간부가 해임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지난해 10월 23일 미국 뉴욕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1994년부터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시작한 ‘사랑의 기내 동전 모으기 운동’을 통해 모은 기부금이 70억 원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15일 복수의 유니세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위원회의 당시 사무총장이던 류모 씨(51)는 이 행사를 빌미로 민간단체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위원회는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소집해 류 사무총장의 자진 사퇴를 권유했다. 하지만 류 총장은 ‘미국에서 계속 살다가 한국으로 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관습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실수다. 억울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해명 편지를 한국위원회 이사진에 우편으로 보내며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사회는 올해 1월 9일 이사회를 재소집해 류 사무총장의 해임을 결정했다.
한국위원회의 고위 관계자는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류 전 사무총장의 답변은 ‘그 돈으로 개인 빚을 갚았다’ ‘현금이 필요해 식비 술값 등으로 썼다”는 등 매번 달랐다”며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는 유니세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만큼 윤리규정에 따라 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류 전 사무총장은 한국위원회 출범 이래 18년 동안 박동은 사무총장(77·여·현 부회장) 체제로 운영되던 사무국에서 2012년 4월 공개채용으로 처음 맞은 사무총장(제2대)으로 화제가 됐다. 한국위원회의 첫 외부 출신 사무총장이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도덕적 문제로 해임된 사실이 알려지자 후원자들은 “한국위원회의 신뢰성이 의심된다”며 동요하는 분위기다. 정기 후원자인 서모 씨(31·여)는 “전 세계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를 돕겠다고 해서 매달 3만 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는데 공금을 사무총장이 마음대로 썼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현재 오종남 사무총장 대행체제로 운영되는 한국위원회는 올해 말 사무총장을 새로 뽑을 계획이다.
서동일·김창덕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