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중앙 종회. 종단의 국회에 해당하는 이 종회는 80여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총무원장 선거인단이 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조계종 제공
조계종을 이끌 제34대 총무원장 선거(10월 10일)를 위한 후보 등록 기간은 9월 18∼20일. 당장 1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 구도는 오리무중이다. 조계종의 총무원장 선거 기상도를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 설왕설래(說往說來)
오가는 말은 무성하지만 선거의 윤곽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11일 총무원장 후보의 원만한 추대를 명분으로 출범한 모임 ‘불교광장’의 등장 때문이다. 조계종은 그동안 스님들의 출가 문중과 학연, 인연으로 연결된 종책 모임을 통해 종권을 창출하거나 대립해왔다. 현실정치의 정당 이합집산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지난해 도박 사건이 불거지자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자승 스님이 속해 있어 여당 격으로 분류되는 화엄·법화회는 물론이고 무량, 무차, 보림회가 모두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모임들은 이후에도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를 중심으로 교구 본사 주지 선거 등에서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불교광장은 옛 화엄·법화회는 물론이고 25개 본사 중 20곳의 주지와 옛 무량회, 무당파 스님들까지 포함시켜 최대 조직을 이뤘다. 종단 안에서는 불교광장의 출범을 ‘조계종의 3당 합당’으로 부른다. 그래서 “불교광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스님이 아니다” “불교광장이 민주적인 선거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 동상이몽(同床異夢)
흥미로운 대목은 누구도 섣불리 출마의 깃발을 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종단의 거의 전 세력을 포괄한 불교광장과 자승 스님의 의중(意中)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직지사 출신을 중심으로 한 직지사단과 옛 무량회의 지지를 받은 법등 스님은 9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불교광장을 향해 ‘돌직구’도 날렸다. “현 원장 스님은 이미 소임에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이 말은 재임에 나서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무량회에서 활동한 중앙종회 의원 장명 스님은 12일 “무량회는 원장 스님의 불출마를 전제로 한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불교광장에 참여했던 것”이라며 불교광장의 대변인 소임을 사퇴했다. 자승 스님이 출마할 가능성이 보이는 만큼 함께할 수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러나 공동대변인 덕문 스님의 말은 다르다. “저쪽 주장은 사실상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얘기라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 여기저기서 원장 스님의 불출마를 공언하라고 한다. 원장 스님은 분명 ‘나를 배제하고 백지 상태에서 후보 추천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마땅한 후보가 없다면 후보로 추천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지 않으냐.”
○ 동귀어진(同歸於盡)
조계종 내부에서는 법등 스님의 불출마 선언을 “나도 (총무원장을) 안 하지만 당신도 할 수 없다”는 동귀어진(파멸의 길로 함께 들어감) 전략으로 보고 있다.
한 중진 스님은 “출마에 뜻을 둔 후보들은 최대 종책인 옛 화엄·법화회의 지지를 얻고 싶겠지만 원장 스님이 모호한 태도를 계속 취할 경우 불교광장에서 탈퇴하거나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 총무원이 출범할 당시부터 사사건건 대립해온 명진 스님은 이미 몇 개월 전 “현 원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연임에 나서면 당선 여부를 떠나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 덕위인표(德爲人表)
“이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원해” 기득권 유지 종단정치에 비판 목소리
종단 안팎에서는 총무원장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종단 내부의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힘과, 현실 권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력이 중요한 자질로 꼽혀 왔지만 이젠 덕망이 높아 세상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덕위인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선거 과정을 통해 종단정치의 폐해도 드러나고 있다. 종단정치가 1994년과 1998년 종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폭력사태는 막고 있지만 기득권 유지와 재생산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종단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종단 지도층 스님들이 연루된 도박과 계율 위반 시비 등으로 불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며 “이제 누가 표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불교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종단의 얼굴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