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린디합을손보미 지음/267쪽·1만1000원·문학동네
손보미
작품의 배치부터 다중우주 이론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모두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수상작 ‘담요’로 시작해 지난해 문학잡지에 발표된 ‘애드벌룬’으로 끝난다. 흥미로운 점은 ‘담요’에서 콘서트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주인공의 아들이 ‘애드벌룬’에서는 멀쩡히 콘서트장을 빠져나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것. 두 작품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간섭하되 독립적인 하나의 우주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과 미국드라마, SF소설 등 다양한 장르물의 세례를 받은 이 1980년생 작가의 또 다른 스타일은 작품 속 공간에서 시대성이나 공간성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번역투 문장의 의도적인 구사나 외국인 인물의 잦은 등장이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작가는 시대성과 공간성을 거세한 공간 위에 인물들을 마치 틀린 철자법처럼 배치하고는 이들 사이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어긋남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통속적인 연애물의 외투를 걸친 작품에서조차 작가는 독자가 궁금해 할 오해와 의심의 실체를 밝히는 데 무관심하다. 대신 이 때문에 신음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해 ‘이런 신음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것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스타일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희소성을 확보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지만, 서사나 위안에 무심한 소설에 냉담했던 독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남아 있는 숙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