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남 논설위원
같은 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일까. 김 할머니는 집회에서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을 꾸짖은 뒤 “박정희 대통령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따님인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여자로서 위안부 문제를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에 대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복절 경축식과 수요집회를 현장에서 지켜본 필자에게 박 대통령의 대일(對日) 발언은 김 할머니의 호소에 대한 화답으로 들렸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고발하고 규탄하는 국내외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지난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도 다녀왔다. 김 할머니는 2000명이 넘는 수요집회 참석자들 앞에서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도쿄에 소녀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북한은 남한에 먹혀들지 않는 ‘최고 존엄’을 들고 나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했다. 남한 근로자의 진입을 막고 북한 근로자를 철수시킨 것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지울 수 없는 실책이다. 북한은 타성에 젖어 협박과 대화 카드를 교대로 내밀며 남한을 흔들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가동 중단 재발 방지와 국제화를 끈질기게 요구해 관철했다. 북한의 무리수를 간파한 우리 국민도 대부분 정부의 결연한 태도를 지지했다.
일본의 행위도 북한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일본의 전쟁 책임 부인은 문명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망발이다. 평화헌법 개정 시도와 집단적 자위권 도입 발상 뒤에 숨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속셈을 눈치채지 못할 문명국가 시민이 있겠는가!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2010년 “무역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이익을 보호하려면 긴급 시 자유무역 루트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발언이 ‘포함(砲艦) 외교’ 논란으로 확산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일본이 전쟁 책임을 부인하고 평화헌법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국가적 수준 차만 드러날 뿐이다.
반(反)인륜 행위를 용납하는 시대도 지났다.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 담당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일본의 이중적 인륜 잣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납치문제 담당상은 북한에 끌려간 일본인 문제를 담당하는 각료다. 일본은 북한의 납치 행위를 인도적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의 반인륜 행위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남한을 상대로 저지른 반인륜 범죄는 한사코 외면하는 일본이 세계 속에서 설 땅은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한 것처럼 일본에도 끈질기고 결연해야 한다. 수요집회가 시작된 14일 정오 서울 기온은 32도까지 치솟았다. 올해 88세인 김 할머니가 내년 광복절 전날 용광로 같은 거리에서 또다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