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 4건중 1건뿐… 국정운영 제대로 속도 못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 구축 등 4대 국정기조 가운데 진도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132개 법안 중 41개(31.1%)의 입법이 완료된 경제부흥이었다. 국민행복 관련은 180건 중 42건이 국회를 통과해 23.3%의 진도율을 보였다. 반면 문화융성 관련 법안은 27건 중 2건(7.4%), 평화통일 기반 구축 관련은 19건 중 1건(5.3%)에 그쳤다.
○ 창조경제보다 경제민주화에 속도
경제민주화는 상반기(1∼6월) 정치권 최대 이슈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각종 법안이 쏟아졌고, 통과시키려는 의원들과 수위 조절을 요구하는 재계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기업들이 하도급법을 위반했을 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줄이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은행법’ 개정안도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은 4월 국회에서 처리됐다. 남양유업 파문처럼 상반기를 휩쓴 기업 내 ‘갑을(甲乙) 관계’ 관행에 관한 비판 정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부 출범 초기 위축된 경기를 감안해 새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입법 속도를 조절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조경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경제민주화가 다른 이슈를 모두 집어삼킨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고용 관련 법안도 상반기 국회를 통과했다. 60세 이상 정년을 의무화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반면 창조경제 분야 입법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57건의 법안 중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 개정안 등 11건만 국회를 통과해 진도율은 19.3%에 그쳤다. 새 정부는 창조경제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고 박 대통령도 여러 차례 언급하며 힘을 실었지만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에 아직까지 뚜렷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데다 경제민주화 이슈에 묻힌 탓에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대학을 창업기지로 육성하고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소기업 창업 지원법’ 개정안도 6월 국회에 접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MICE) 산업 육성을 위한 ‘국제회의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제부흥 분야에서는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의 진도율이 44.7%로 가장 높았다.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가로막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공언했고 주거안정 대책 강화, 교육비 부담 경감 등을 약속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골목 가게와 전통시장 시설을 개선하는 내용의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소상공인 시장 진흥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등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군 복무 기간 대학 학자금 대출이자 면제, 준공공임대주택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등을 다룬 법안도 본회의를 거쳤다.
○ ‘4대 악’ 관련, 국민안전 분야 진도율 높아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사회의 ‘4대 악(惡)’으로 규정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를 반영하듯 국민행복 분야 법안 중에는 국민안전 관련 법안이 다수 통과됐다. 고의적으로 식품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퇴출시키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국민행복 분야 가운데 맞춤형 고용복지 관련 법안은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경력 단절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진도율(16.1%)이 낮았다. 창의교육 분야의 법안 진도율(9.1%)도 10%를 밑돌았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하반기 국회에서도 국정과제 입법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박 대통령이 정치적 이슈와 민생 이슈를 분리하고, 특히 민생 이슈에 대해선 야당을 적극 설득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규·장원재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