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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2050년 교통사고 사망 ‘0’… 과속 막는 회전교차로 확대

입력 | 2013-08-19 03:00:00

[시동 꺼! 반칙운전/6부]<1>스웨덴, 16년째 ‘비전 제로’ 운동




스웨덴 린셰핑 시의 한 회전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원형 섬을 돌아 나가고 있다. 스웨덴은 교통사고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진입 차량의 속도를 줄이는 효과를 주는 회전교차로를 2500개까지 만들었다. 린셰핑=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지난해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3.1명. 스웨덴의 교통안전 성적표다. 우리나라는 10.6명으로 스웨덴의 3배가 넘는다.

스웨덴의 교통안전 수준은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1위다. 인구 912만 명인 이 나라에서 지난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286명. 5094만 명인 한국은 2012년 교통사고 사망자가 5392명이었다.

세계에서 교통사고에 관한 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은 더 원대한 꿈을 세웠다. 1997년 10월 국회에서 선포한 ‘비전 제로(Vision Zero)’가 그것. 2007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를 반으로 줄이고 2020년까지는 ‘제로(0)’로 만든다는 목표다. 1997년 당시 스웨덴의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6.1명으로 당시에도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사망자 수가 매년 감소 추세였음에도 ‘더이상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스웨덴은 2007년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5.2명으로 아쉽게 목표 달성에 실패하자 기존 2020년이었던 비전 제로 달성 목표연도를 2050년으로 늦췄지만 정부는 후퇴하지 않고 관련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교통안전 정책으로 불리는 ‘비전 제로’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동아일보가 교통안전공단 지윤석 박사와 함께 스웨덴을 찾았다. 스웨덴 교통청의 맛스오케 벨린 박사와 국립도로교통연구소(VTI)의 켄트 구스타프손 부원장 등으로부터 비전 제로에 대해 들어봤다.

○ ‘사고 늘더라도 죽는 사람 없어야’

구스타프손 부원장과 함께 비전 제로 정책이 가장 잘 실현되고 있다는 린셰핑 시(市)의 한 회전교차로(roundabout)를 찾았다. 스웨덴 교통당국은 최근 회전교차로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비전 제로 선포 당시 전국 700여 개에 불과하던 회전교차로가 2002년엔 1000개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500개를 돌파했다. 회전교차로 설치는 비전 제로의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 정책으로 꼽힌다. 스웨덴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교차로부터 회전교차로로 바꾸고 있다.

가장 모범적 형태의 회전교차로를 살펴봤다. 가운데 원형 교통섬의 지름은 20m 정도였고 1차로가 원형 섬을 둘러싸고 있었다. 원형 섬에는 덤불과 크지 않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지대는 주변보다 약간 높았다. 스웨덴의 회전교차로에는 철저한 룰이 있다.

우선 원형 도로 안에 있는 차가 운행의 최우선권을 갖는다. 이 때문에 원형 도로에 차가 있을 때에는 절대 다른 차가 그 안으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 또 2차로의 원형 도로 안에서는 오른쪽에 있는 차량(원형 내에서 바깥쪽)에 운행의 우선권이 있다.

린셰핑 시의 회전교차로에는 몇 가지 안전장치도 있다. 구스타프손 부원장은 “교차로 안에 있는 원형 섬의 지름은 20m 정도가 돼야 가장 효과적으로 속도를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과속하던 차가 원형 섬 안으로 돌진할 수도 있기 때문에 딱딱한 구조물을 세우는 건 되도록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입로마다 횡단보도를 설치해 보행자와 자전거의 통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수”라고 덧붙였다.

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바꿔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안전상 이점은 이곳을 지나는 차의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 신호가 바뀌기 전에 얼른 교차로를 지나기 위해 속도를 내는 경우 등 차가 빠른 속도로 교차로를 지나며 사고를 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교통사고에서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가 속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서는 충북 증평군에서 회전교차로를 설치해 실험한 결과 차량 속도가 평소보다 30%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회전교차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통과하기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다. 또 일반 교차로의 신호등처럼 명확하게 통과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웨덴에서 회전교차로를 늘리는 이유는 뭘까. VTI 연구원 요르겐 라르손 씨는 “회전교차로에서는 접촉사고같이 작은 사고는 더 늘 수도 있지만 사람이 죽을 정도로 큰 사고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속도가 줄어든 상태인 데다 정면충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비전 제로와 통하는 면”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스웨덴 교통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사고를 줄이는 것’이었지만 비전 제로 이후 시각이 달라졌다. 교통정책의 무게중심이 ‘사망자 혹은 심각한 부상자를 줄이는 것’으로 옮겨갔다. 실제 2007년부터 5년간 스웨덴의 전체 교통사고는 12.4%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사망자는 32.3%나 줄었다.

다만 회전교차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일단 교통량이 너무 많은 지역에선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교통체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윤석 박사는 “당장 서울 같은 대도시에 설치하기엔 무리가 있고, 도입한다면 교통량이 적은 지방부터 서서히 늘려가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운전자들이 회전교차로에 적용되는 차량 운행의 대원칙을 잘 지켜줘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이 원칙을 운전면허 학원에서 철저히 가르치고 면허시험에도 문제로 출제한다.

○ “교통사고는 사회의 책임”

취재팀이 스웨덴을 찾았을 때, 마침 스톡홀름 중심가의 한 호텔에선 비전 제로의 최신 동향을 소개하는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카타리나 엘름세테르스베르드 스웨덴 건설교통장관(여)을 만났다. 엘름세테르스베르드 장관은 1997년 국회가 비전 제로를 선포할 때 의원으로서 참여하기도 한 인물이다.

“비전 제로는 도덕적 원칙에 기반합니다. 그동안 교통수단의 편리함과 사람의 생명을 맞바꿔온 관행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또 그간 교통사고의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다는 생각을 바꿔서 도로 설계자와 정책 결정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에 따라 스웨덴의 교통정책은 운전자에 대한 교육과 처벌 중심에서 안전한 도로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회전교차로 외에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지적되는 ‘2+1 도로’(2차로와 그 역방향 1차로로 이뤄진 도로)에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고 있다. 또 기존 시속 30km, 50km, 70km 등 시속 20km 단위로 매겨졌던 속도제한을 시속 10km 단위로 세분해 적절한 속도 규제가 이뤄지도록 하고, 도로 근처 장애물(나무 암석 등)을 없애 차가 도로를 벗어나더라도 충격을 받을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스톡홀름·린셰핑=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공동 기획: 안전행정부·국토교통부·경찰청·교통안전공단·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tbs 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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