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에 숨겨진 가공할 폭력성 고발한 은둔형 작가
20세기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인 소설가 코맥 매카시(80)가 제3회 박경리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국경 3부작’을 통해 인간 내면에 숨은 폭력성을 폭로하고,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겪는 본능과 양심 사이에서의 심적 갈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작가는 미디어 노출을 극히 꺼리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는 ‘은둔 작가’로도 유명하다. 민음사 제공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코맥 매카시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가공할 폭력성이란 주제에 천착해 왔다. 그의 이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코언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년)를 통해서다.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 영화는 매카시의 동명 소설(2005년)을 영화화한 것이다.
매카시의 소설은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애리조나나 남부 텍사스의 어둡고 스산한 사막지대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해 서부극(웨스턴)으로 구분되곤 한다. 하지만 멕시코 접경지대라는 배경은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 피 흘리는 삶의 고통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할 뿐 ‘석양의 무법자’ 식의 클리셰(상투적 표현)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문학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시사 주간 타임이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한 ‘핏빛 자오선’(1985년) 발표 이후다. 1850년대 서부 개척시대가 배경인 이 소설은 살육 고문 약탈 등 야만에 대한 연대기로, 미국인들이 숭고하다고 자부해 온 미국의 역사를 처절히 뒤집는다. 미국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이 소설이 “현존 미국작가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뤘다”며 매카시를 필립 로스,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4대 작가로 꼽기도 했다.
매카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국경 3부작’의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간 것은 1976년 텍사스 주 엘파소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전미도서상, 전미비평가협회상을 휩쓴 ‘모두 다 예쁜 말들’(1992년)은 20세기 중반 미국 텍사스 주에 살던 소년(존 그레이디)이 집을 떠나 멕시코를 떠돌며 겪은 일을 다룬 성장소설로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경을 넘어’(1994년)는 3부작 중에서도 압권인 작품이다. 새끼 밴 늑대를 풀어주려고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멕시코로 건너간 형제 빌리와 보이드의 이야기. 늑대 박멸을 시도했던 미국의 역사를 돌아보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경이 언어와 인종의 벽을 넘어서는 대자연의 일부임을 외친다. 그가 ‘서부의 셰익스피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평원의 도시들’(1998년)에선 1부와 2부의 주인공인 존 그레이디와 빌리가 역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떠돌며 사랑과 죽음의 의미를 깨쳐 간다.
그는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작가다. 2007년 5월 오프라 윈프리쇼의 북클럽에 출연한 것이 첫 TV 출연이었다. 그는 이를 “책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인적 드문 산속 오두막에서 저술에만 몰두하고 있다.
매카시는 신작 ‘패신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인간 본연의 속성과 세상의 어둠을 파헤쳐 온 이 은둔 작가의 치열한 문학 정신은 절제와 극기로 인간 내면세계를 그려낸 박경리의 문학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세기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 이세기 심사위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