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1때 정신분열증 진단받고 투병… 사회복귀 성공한 이성은씨
경기 용인시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성은 씨는 “정신질환을 보는 세상의 편견을 허무는 일을 하고 싶다. 정신장애가 있어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용인=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경기 용인시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성은 씨(35·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1995년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뒤 꾸준히 약을 먹고 있지만 현재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일하고 있다.
정신질환은 사이코패스나 범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병으로 본인이 잘 관리하고 주변에서 도와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 배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정신질환이란 이름의 불청객
식사도 못하고, 수면도 거의 취하지 못하자 부모님은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고교 1학년 때였다. 그는 자신이 인신매매 당하는 거라 생각했다. 곧장 입원을 했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병원의 성공사례라고 불렸다. 의사는 퇴원하기 전에 한 번 바깥세상에 적응해보라며 외박을 보내줬다. 첫 외박은 실패였다. 집에 도착하자 갑자기 극심한 불안감이 느껴졌고 죽고 싶어졌다. 결국 혼자 방 안에서 문을 잠근 뒤 벽에다 컵을 던져 깨버렸다.
1년을 휴학하며 병원에서 약을 먹고 사회성 훈련도 받았다. 충분히 치료받은 뒤 복학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친구관계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한 뒤 건축사무소에서 경리 일을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게 느껴져 그만뒀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먹던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부작용이 생겨 약을 바꿔야 했다. 약을 바꾸려면 약 한 달간 공백기를 가져야 한다. 약을 끊고 몇 주 지나자 다시 환청이 들리고 망상 증세가 나타났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4층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렸다. 목숨은 건졌지만 턱과 이가 부러졌다.
엉망인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는 그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고교시절부터 주치의였던 이영문 아주대병원 교수(현 국립공주병원장)였다. 아주대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닌데 달려온 것이다. 그는 “(이 교수가) 애써 눈물을 감추려는 모습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좌절감에 빠진 그에게 이 교수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더 힘을 내 잘사는 사람도 많다”고 다독여줬다. 그는 이 교수의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퇴원 뒤엔 정신질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센터를 다니며 직업훈련을 했고 취업알선도 받았다. 2005년, 면접을 본 끝에 병원 식당에서 일하게 됐다.
일이 쉬웠던 건 아니다. 처음 몇 년간은 설거지를 할 때 강박증상 때문에 그릇을 10번씩 헹궜다. 당연히 설거지가 느렸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이해하고 배려해줬다.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는 이 씨는 “일을 하면서 많이 건강해졌다”며 “살아있다는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에게 정신질환은 만성질환처럼 꾸준히 관리하고 조절해야 하는 병이지 삶의 걸림돌은 아니다. 그는 언젠가 사회복지사가 되는 걸 꿈꾸고 있다.
황태연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 이사장(용인정신병원 진료원장)은 “정신질환은 생물학적으로는 약을 먹으면 개선되지만 사회적인 활동을 하려면 환경도 중요하다”며 “가족의 지지도 필요하고 직업을 가져 대인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인=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