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타도 대상이던 민정당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김영삼(YS)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명분으로 전두환 노태우를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대법원은 전두환에게 내란죄 반란죄 및 수괴 혐의에다 뇌물수수죄까지 책임을 물어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0억 원을 선고했다. YS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임기 마지막 해에 그를 풀어 줬다.
정작 김대중(DJ) 대통령은 두 사람을 문제 삼지 않았다. 처벌을 받은 전직 대통령을 다시 벌주는 것은 정치 보복으로 비칠 수 있었다. 호남 출신 대통령이 영남 출신 대통령을 처벌하는 데 따른 민심도 고려했을 것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선 정치적 보복을 삼갈 필요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 DJ 정부의 아킬레스 힘줄인 대북송금 특검을 받아들였다. 전 대통령 비자금에 손댈 경우 누구는 잡고 누구는 놔둔다는 형평성 시비가 부담이 됐을지 모른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허물을 덮거나 비리에 눈감을 수는 없다. 총칼로 정권을 잡고 재벌들로부터 천문학적 뒷돈을 챙겨 빼돌린 부패 행위를 감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개혁’은 정치와 사법 사이의 모호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국회는 전직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을 추징하기 위해 시효를 연장한 것은 물론 친인척까지도 재산 추적 범주에 넣었다. 법안심사 과정에서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전두환추징법은 특정인을 겨냥한 위인설법(爲人設法)으로 다 위헌이 난다”고 지적했다. 범죄 사실이 있은 지 20여 년이 흐른 뒤에 마련한 법으로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재단하는 것은 소급 입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야당 의원조차 위헌을 거론할 정도니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 논란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과 가족들의 못된 행태가 얄밉다고, 국민감정이 좋지 않다고 초헌법적 징계를 할 수는 없다. 대통령 말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정당성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전두환에게도 명암(明暗)이 있고 공과(功過)가 있다.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은 그에게 벗을 수 없는 멍에다. 1980년대 3저(低) 호황으로 이룬 경제성장은 지금의 번영된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 됐다. 임기 내내 대학 캠퍼스를 최루탄으로 물들였고 수많은 학생을 교도소로 보냈지만 직선제 개헌과 대통령단임제는 전두환의 유산이었다. 전두환 비자금 문제는 이미 검찰과 사법을 넘어선 정치의 영역이 돼 버렸다. 아내와 함께 백담사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노태우와 함께 수의(囚衣)를 입고 법정에 선 것 자체가 사법권을 넘나든 고도의 정치행위였다. 전직 대통령 3명이 15년 동안 ‘방치’한 것도 정치적 판단이었다. 지금 다시 사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적법 절차는 준수해야 한다. 미운 전두환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