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 멕시코 한인자손 40여명,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고국 방문
19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을 찾은 멕시코와 쿠바 한인 후손들이 현수막에 통일에 대한 염원과 한국 방문 소감을 적고 있다. 이들은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12일부터 20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고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한다. 임진각=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일 오전 11시경 경기 파주시 임진각 앞에서 40여 명의 젊은이가 ‘우리는 하나의 한국인(We are one Korean)’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어올렸다. 멕시코와 쿠바에서 온 이들은 이국적 외모에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몰랐지만 모두 한국인의 후손이다.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조규형)의 초청으로 ‘애니깽(에네켄) 한인’의 후손 중 현재 쿠바에 살고 있는 10명이 12일 고국 땅을 밟았다. 13일에는 멕시코 한인의 후손 30명도 합류했다. 쿠바는 1959년 카스트로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한국과 국교를 단절한 상태다. 그만큼 이들의 한국 방문과 분단 현장 탐방이 갖는 의미는 컸다.
한 후손이 정성스레 적은 통일 염원. ‘만세’라는 한국어가 눈에 띈다. 임진각=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산체스 씨는 증조할아버지의 빛바랜 사진과 신문기사를 품에 지니고 있었다. 입국 다음 날인 13일 오후에 찾아간 인천 이민사박물관에서 한 액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잠시 후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액자 속에서 발견한 증조부의 모습은 오랫동안 집안 어른들이 전해왔던 사진의 얼굴과 똑같았다. 산체스 씨는 “삼촌이 한국 이름을 붙여줘 어렴풋이 한국계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전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아트리스 몬테스(한국 이름 임보람·26·여) 씨 역시 쿠바 한인의 후손이다. 그는 16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 몬테스 씨의 증조부 임천택 선생(1903∼1985)은 쿠바 한인 사회에서 지회를 조직해 민족교육 등으로 항일운동의 정신을 되살린 애국지사였다. 2004년 증조부의 시신은 고국으로 이장됐지만 돌보는 이가 없어 묘비에는 꽃 한 송이 놓여 있지 않았다. 쿠바는 공산화된 이후 올해 1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행되기 전까지 출국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몬테스 씨 가족은 이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식 큰절을 올린 몬테스 씨는 “이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으니 내가 우리 가족의 소원을 이룬 것”이라며 오래도록 눈물을 흘렸다.
귀국 일을 하루 앞둔 19일 비무장지대(DMZ)를 찾은 이들은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 올라 ‘하나의 한국인’임을 되새겼다. 쿠바에서 온 롤란도 곤살레스 군(17)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할아버지의 조국을 찾아올 때는 남과 북을 모두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진각=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