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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나가고 싶지 않아… 별빛 좇아 살거야

입력 | 2013-08-20 03:00:00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맑음. 별빛을 따라 갈래. #71 Muse ‘Starlight’(2006년)




‘우리의 희망과 기대/블랙홀과 계시!’

이런 문구를 어른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반복해 외친다. 때 아닌 휴거나 종말론을 설파하는 이색 종교집단의 필사적 집회가 아니고서야…. 근데 그건 17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 쓴 문구는 올여름 대형 록 페스티벌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한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첫날 마지막 출연진인 영국 록 밴드 뮤즈의 노래 ‘스타라이트’의 후렴구 가사다.

1994년 영국 데번에서 결성된 뮤즈는 현재 세계 주류 록 음악계에서 가장 강력한 트리오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주제곡 ‘서바이벌’을 부르기도 한 이들의 라이브 공연은 그 폭발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리더이자 보컬, 기타, 피아노를 주무르는 매슈 벨라미는 ‘나가수’ 뺨치는 가창력에 초절 기교의 연주력, 로커다운 파괴적인 무대 매너까지 겸비한 록 음악계의 ‘엄친아’다.

17일 공연 말미에도 연주하던 전자기타를 전매특허인 투명 그랜드피아노를 향해 던져 버리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록과 전자음악을 섞은 세련된 음악에 장착된, 뽕짝이나 만화 주제가, 러시아 민요에서 적절히 따온 듯한 단조의 멜로디는 귀에 쏙쏙 박히며 뮤즈를 가장 노래 따라 부르기 좋은 밴드로 만든다.

근데 벨라미가 천착하는 세계는 우주의 넓이만큼 허황되다. ‘지구 밖에서 외계인이 침공해 와서 인류 종말이 눈앞에 닥쳤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비밀 병기로 끝내 그들을 물리치리라’는 식의 가사가 많다. CD와 DVD로도 제작된 2007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서는 HAARP(고주파 활성 오로라 연구 프로그램)라는 제목 하에 경기장 곳곳에 거대한 안테나를 설치했다. 17일 한국 공연 중간에는 무대 위로 4m짜리 로봇 ‘찰스’가 걸어 나와 연기와 불빛을 뿜어 댔다. 뮤즈는 수십억 원짜리 장난감을 연주하는 음악 요정들이다.

다음 날 마지막 무대에 오른 메탈리카도 세 차례 내한 중 가장 훌륭한 공연을 펼쳤지만 뮤즈는 확실히 관객을 다른 세계로 끌고 갈 줄 알았다. ‘난 별빛을 좇을 거야/내 삶이 끝날 때까지/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더이상 알지 못하지만…’(뮤즈 ‘스타라이트’ 중) 이건 회사엔 비밀인데. 관중 한가운데서 뛰고 목청껏 노래하는 나도 음으로 둘러싸인 우주, 또는 자궁으로 영원히 숨고만 싶다. 나가고 싶지 않다. 어른들의 세계로.

18일을 끝으로 올여름 대형 록 페스티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앞으로 11개월 동안 무슨 재미로 사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