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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시장은 깡통 시장”

입력 | 2013-08-20 03:00:00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비판한 ‘클래식 음악계의 낮과 밤’을 펴낸 윤혜경 뮤직필 대표. 그는 “원래 제목은 ‘음악시장, 깡통시장’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너 무 자극적이라며 격조 있게 바꿨다”며 웃었다. 뮤직필 제공

“국내 클래식 음악가 중에 독주회를 열어 학부모나 제자들의 티켓 단체구입 없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음악가가 있을까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연기획사 뮤직필의 윤혜경 대표(51)가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을 낱낱이 밝힌 ‘클래식 음악계의 낮과 밤’(예솔·사진)을 최근 펴냈다. 그는 “몇 년만 음악계에 몸담으면 누구나 알게 되는 것들이지만 어느 누구도 드러내놓고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며 “회사 문을 닫을 각오로, 고해성사 하는 심정으로 지난 2년간 고민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음대에서 음악이론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했고, 음악전문지 월간 ‘피아노음악’ 기자로 17년간 일한 뒤 2002년 기획사를 열었다.

“우리 딸조차 엄마가 만드는 음악회에 안 오더군요. 10만 원이 넘는 표를 사서 부산까지 뮤지컬은 보러 가면서 말이에요. 과연 한국 음악계에 비전은 있을까, 어떻게 해야 앞으로 클래식 음악이 살아남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클래식 음악회는 넘쳐나는데 청중은 모자란, 한국의 기형적인 클래식 음악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전문 연주자나 작곡가가 연주나 창작만으로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에 목을 맨다. 이런 직책이 있어야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레슨을 받는 학생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교수 평가와 실적을 위한 음악회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여러 음악회를 주최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 매표소 앞에서 티켓 여러 장을 손에 쥐고 서성이는 학생들을 볼 때였어요. 스승의 음악회 티켓을 여러 장 구입했지만 나눠줄 사람이 없는 거죠. 공연이 시작되면 티켓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음악계에서 가장 비참한 일이에요.”

그는 민간 기획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획공연 대신 해외 유명 연주자나 연주단체, 공연 상품을 수입하고, 기업들은 스타 아티스트와 대형 공연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이미지 홍보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대형 클래식 음악회를 후원, 협찬합니다. 말이 협찬이지 VIP석 단체구매로 보는 것이 정확하죠. 기업은 협찬금에 상응하는 티켓을 가져가는데, 티켓 가격을 보고 공연 수준을 판단하는 몰상식한 일도 벌어집니다.”

이 책에서는 흑백 인쇄물을 쓰는 미국, 유럽의 음악회와 달리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프로그램 북을 만드는 소소한 부분부터 대관을 무기 삼아 권력으로 군림하는 공연장들, 실력이 아니라 서류 잘 쓴 사람에게 유리한 지원제도, 속 빈 강정인 국제음악제, 허약한 한국 음악교육 시스템까지 전방위로 돋보기를 들이댔다.

윤 대표는 “이런 책을 썼으니 앞으로 뮤직필이 대관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내년 4월까지 계획된 공연을 마친 뒤에는 ‘클래식 음악계의 낮과 밤’ 2탄 집필과 강의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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