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4人(in) 체홉’ ★★★
옴니버스 연극 ‘14人(in) 체홉’ 중 ‘곰’을 열연 중인 김태근(왼쪽)과 정수영. 한국공연예술센터 제공
기사를 출고하고 나서 듣는 데스크의 다양한 꾸지람 중 무엇보다 가슴 아픈 말. 이유가 뭐든 의미에 대한 부연이 필요하다면 실패한 글이다. 글은 그저 글로 끝이어야 한다. “그 단어는 이런 뜻으로 쓴 것”이라는 중언부언은 수치스러운 변명일 뿐이다.
20대 이후 허다하게 찾아간 대중음악 공연 중 가장 짜릿했던 경험 중 하나가 2006년 ‘패닉’ 콘서트였다. 그 8년 만의 4집 공연 후 그들의 앨범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작정한 듯 처음부터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막바지에 이르러 “이제 마지막 곡입니다” 짤막한 작별인사가 들릴 때까지 무대는 오로지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그 자신감이 통쾌했다.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 프로그램인 ‘14人(in) 체홉’은 소통을 택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단막극 네 편을 하루 세 편씩 묶어 공연한다. 시작과 함께 관객 앞에 나선 프로듀서가 말한다. “6월 초연 때는 14명의 배우가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상 12명이 됐습니다. 앞으로 몇 명이 되건 이 연극은 ‘14人(in) 체홉’이라는 제목으로 올릴 겁니다. ‘14인인데 왜 12명이냐’라고 궁금해할 분이 많을 듯해 말씀드립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듯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단편 하나가 마무리될 때마다 무대로 올라왔다. “체호프는 ‘외로움이 두렵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했죠.” “이 ‘백조의 노래’는 보고 또 봐도 언제나 눈물을 흘리게 되네요.” 설명을 틈타 뒤늦게 입장한 관객들이 빈자리를 찾아 서성이는 통에 또렷이 들리지도 않았다.
체호프는 어떤 대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주관적 판단과 선입견의 개입을 경계하는 ‘객관주의’ 문학을 추구했다. 막간의 설명은 친절한 배려였겠지만 관객 각자의 자유로운 상념을 툭툭 끊어내는 작용도 했다. 배우는 “내가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죠?”라며 연신 객석의 호응을 주문해 제3의 공간을 서둘러 치워냈다. 그러던 그가 문득 자신을 ‘러시아 사람 뉴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여긴 어딘가. 객석은 소통과 무시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어색하게 떠돌았다.
페스티벌의 취지를 감안한 듯 공연 도중 관객을 입장시킨 선택도 결정적 실수였다. 맨 뒷줄에서 부채질에 여념 없던 지각 관객들. 커튼콜 때 박수 한 번 치지 않았다.
오경택 연출. 박정자 최용민 박상종 유준원 김태훈 서정연 등 출연. 22일까지 서울대학로예술극장. 3만 원. 02-3668-0007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