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 지하벙커서 NSC 첫 주재
박근혜 대통령이 을지연습 첫날인 19일 ‘지하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남재준 국가정보원 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정홍원 국무총리, 박 대통령,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모두 노란색 민방위복 차림이다.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이어 오전 9시부터 위기관리센터 회의실로 옮겨 을지연습에 따른 ‘을지 국무회의’를 열었다. 30분 뒤 같은 장소에서 20일 열릴 예정이었던 ‘일반 국무회의’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 모두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었다. 위기관리센터 회의실은 전시(戰時)에 비상 국무회의를 여는 곳으로 박 대통령이 이곳에서 회의를 연 것도 처음이다.
지하 벙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여는 등 자주 회의를 했던 곳이지만 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회의를 여는 걸 자제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정부도 을지연습에 따라 NSC와 국무회의를 위기관리센터에서 열었다”고 말했으나 안보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개전 초기 (북한의) 장사정포 포격 시에 주민 대피와 방호시설을 점검하고 수도권과 후방 지역에 대한 테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사이버 공격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을 비롯해 최근 나타나는 새로운 도발 양상을 고려한 훈련에도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이 보유한 다양한 생화학무기가 사용될 경우 많은 의약품이 일시에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탄저균 같은 생물학 무기의 치료제나 백신이 충분히 구비돼 있는지, 화학무기가 사용될 경우 군과 민간 모두 충분한 의약품 보급을 받을 수 있는지, 의약품 생산 공장들이 포격을 당할 경우 대안이 있는지 치밀하게 고려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시설이 폭격받을 경우 전기 수도 가스 등을 공급받지 못할 상황일 때 전시 비상식량이 충분한지, 민간에 보급되는 전시 식품이 전기 수도 가스 없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해 달라”는 지시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대비는 국가안보와 국민안위에 가장 필수적인 것으로, 한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안보태세를 강조한 것은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지만 여성 대통령으로서 안보에 약점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테러와 생화학 무기 공격 징후 첩보를 감지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으나 청와대 관계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을지 국무회의’에서 “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을 계기로 을지연습이 시작됐다”고 말한 것처럼 청와대 기습사건에 대한 악몽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한편 북한은 을지연습에 대한 비난을 자제한 채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남북이 불신하고 대결하던 과거를 털어버릴 때가 됐다. 남북관계 개선의 비결은 ‘우리 민족끼리’에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외세 의존, 외세와의 공조에 계속 매달린다면 신뢰는 고사하고 대결의 악몽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정도로 을지연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어떤 경우에도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