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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만에 터진 ‘지브롤터 뇌관’ 英-스페인 영유권갈등 날로 격화

입력 | 2013-08-20 03:00:00


18일 스페인 어선 60여 척은 지브롤터 해역에 접근해 지브롤터 정부가 7월 초에 설치한 콘크리트 어초(魚礁·물고기 서식을 돕는 인공 구조물)가 어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시위를 벌이다 쫓겨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9일 보도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말 스페인 정부도 지브롤터가 어초 투하를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스페인 어선의 어망이 어초에 걸려 찢어지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며 보복 조치로 국경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평소 5분이면 충분했던 스페인 지브롤터 국경 통과가 5∼7시간으로 늘어났다.

영국도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16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스페인이 자유통행을 보장한 유럽연합(EU)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며 “조사단을 파견해 증거를 수집해 달라”고 EU에 공식 요청했다. 또 “오래전 계획된 일상적 훈련”이라며 지브롤터 해역에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호와 호위함대 등을 파견할 방침이다. 스페인은 지브롤터행 영국 항공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불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군사·산업적 요충지에 있는 지브롤터를 둘러싼 영국과 스페인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영토 남단에 있는 영국의 해외 속령으로 약 6.8km²(서울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3만여 명이 살고 있다. 1713년 에스파냐(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개입한 영국이 승리하면서 위트레흐트 조약에 따라 영구 할양받아 지배하고 있다.

두 나라는 겉으론 자국민의 어업, 자유통행 문제 등을 내세우며 상대국을 비난하고 있지만 갈등의 바탕에는 ‘영토 분쟁’이 깔려 있다. 스페인은 올해가 영토 할양 300주년이라는 점을 이용해 지브롤터 반환을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화할 의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스페인 해경 순시선은 지브롤터 유람선의 진로를 방해하는가 하면 올 2월에는 지브롤터 영해 안으로 들어와 20분간 머물다 나가기도 했다. 영국은 이 사건들을 스페인의 의도적 도발로 보고 있다.

양국이 이처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지브롤터의 지정학적, 경제적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브롤터는 이집트 수에즈, 터키 보스포루스와 함께 지중해 3대 요충지다. 영국의 전 세계 14개 해외 속령 가운데 유일하게 유럽 대륙에 있는 곳이 지브롤터다. 영국은 이곳 해군기지를 통해 유럽 본토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스페인은 지브롤터 영해권을 영국이 행사하는 것을 ‘목의 가시’로 여기고 있다. 자국 앞 바다를 영국이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스페인 부자들이 세율이 낮은 지브롤터를 조세피난처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불만이다.

스페인은 포클랜드 전쟁으로 영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르헨티나와 손잡고 지브롤터 문제를 올해 안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 결의안 1514호는 ‘영토 통합을 막는 시도는 유엔 헌장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있다. 스페인은 이를 근거로 원래 스페인 땅이었던 지브롤터와 스페인의 통합을 영국이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지브롤터 주민들이 이미 1967년과 2002년 투표를 통해 속령으로 남기로 결정했다는 점을 들어 스페인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2002년 투표에서는 투표자의 99%가 영국을 택했다. ‘지중해의 입구’ 지브롤터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앞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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