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편의 오페라 전곡 담은 ‘투토 베르디’ 시리즈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절반수준 단축버전 관심
베르디 쪽을 살펴보자. 먼저 그가 완성한 26편의 오페라 전체와 레퀴엠을 27장의 블루레이(또는 30장의 DVD)에 담은 ‘투토 베르디’ 시리즈(C Major)를 빼놓을 수 없다. 베르디의 오페라들은 작품마다 공연 빈도가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기획물이 아니라면 ‘하루 동안의 왕’ ‘조반나 다르코’ ‘알치라’ ‘도적떼’ ‘해적’ ‘레냐노의 전투’ 같은 비인기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작곡가의 오페라를 섭렵하고자 하는 중증 베르디 마니아들에게 ‘투토 베르디’ 시리즈는 상당히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시리즈 중에서 추천할 만한 또 다른 타이틀로는 ‘에르나니’ ‘맥베스’ ‘루이자 밀러’ ‘리골레토’ ‘시몬 보카네그라’ ‘오텔로’ ‘팔스타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리골레토’는 데이비드 맥비카의 퇴폐적인 연출로 큰 화제를 낳았던 1996년 코벤트가든 실황(OpusArte)이 손꼽힌다. 하지만 지나친 선정성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면 베테랑 바리톤 레오 누치가 자신의 리골레토 중 최고로 꼽았던 2006년 취리히오페라 실황(Arthaus)이나 소프라노 인바 물라와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스의 멋진 호흡을 담은 2004년 리세우극장 실황(아울로스 라이선스)이 괜찮은 대안이 될 것이다.
‘아이다’에서 돋보이는 영상물은 스핑크스 대신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잔해가 등장하는 2009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실황(C Major)이다. 호반 무대 특유의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신랄하게 비꼬았던 그레이엄 비크의 연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출시작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14시간이 넘는 엄청난 연주시간이 소요되는 ‘니벨룽의 반지’를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단축한 버전을 무대에 올린 아르헨티나 콜론 극장의 프로덕션(C Major)이다.
이 대작의 어마어마한 연주시간이 부담스러운이들이라면, 이 단축버전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최근 흥미로운 영상물이 여럿 등장한 작품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다. 작곡가의 증손녀인 카타리나 바그너가 연출한 2008년 바이로이트 실황(OpusArte)은 자신의 증조부를 비롯한 독일 예술계의 거목들을 맘껏 희화화한 파격적인 무대로 객석의 맹렬한 야유와 갈채를 동시에 받았다. 이런 파격성이 거북하다면 소도시의 소박한 축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2011년 글라인드본 실황(OpusArte)이나 다소 오래된 영상이지만 한글자막과 함께 최근에 재발매된 1995년 베를린 도이체오퍼의 고전적인 프로덕션(Arthaus)을 권한다.
‘로엔그린’은 놀라운 발상의 전환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두 영상을 소개한다. 쥐를 모티프로 한 그로테스크한 영상과 의상, 그리고 충격 그 자체의 대단원으로 마무리되는 한스 노이엔펠즈 연출의 2011년 바이로이트 실황(OpusArte)과 장엄한 독일 신화를 초등학교 코흘리개들의 유치한 패싸움으로 평가절하 해버린 페터 콘비츠니 연출의 2006년 리세우극장 실황(EuroArts)이다. 다만 후자는 타이틀 롤을 맡은 존 트렐리번의 힘에 부치는 가창에 대해서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할 듯싶다.
‘탄호이저’는 중세의 음유시인인 주인공을 고뇌로 가득한 현대의 화가로 탈바꿈해놓은 로버트 카슨 연출의 2008년 리세우극장 실황(C Major)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그너 가수들인 르네 콜로와 귀네스 존스가 도이체오퍼와 함께 1993년에 일본에서 공연한 실황(Arthaus)을 한글자막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오페라 전편을 영상물로 만날 수 있게 된 베르디와 달리 ‘연애금지’ ‘요정’ 같은 바그너 초기작들은 여전히 영상물로 접할 길이 요원하다. ‘리엔치’의 경우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를 연상케 하는 2010년 도이체오퍼 실황(Arthaus)이 나와 있으며, 2012년 툴루즈에서 선보였던 조르주 라벨리의 걸출한 프로덕션(OpusArte)이 한글자막과 함께 조만간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