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를 좀 입양해 주세요. 외국인이나 재벌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2002년 한 여중생이 입양홍보단체 홈페이지에 깜찍한(또는 발칙한) 글을 올렸다. 피아노 전공이 꿈인데 집안이 어렵다며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다행히도 담임교사가 “잘 상담하겠다”고 나섰지만 당시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외국인이나 재벌이 나섰어도 그 여중생은 양녀가 될 수 없다. 호적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입양특례법은 반대다. 친생부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를 자녀로 올린 출생신고가 없으면 입양이 불가능하다. 그 후 출산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그냥 버리는 일이 늘고 있다. 서울 상록보육원 부성하 원장은 “예전엔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라도 남겼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작년 10월 이후 들어온 아기들 11명이 흔치도 않은 원장 성을 따서 모두 ‘부 씨’다.
▷아동이 부모를 알 권리를 존중하고, 아동 중심으로 입양이 이뤄져야 한다는 법의 취지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책상머리에서 만든 법인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를 입양 보내는 엄마의 90%가 미혼모이고 상당수가 출산 자체를 감추려 하는데 부모로 등록하라는 건 잔인하다. 물론 정부와 관련 국회의원,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런 법의 맹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아 유기는 그 전부터 늘고 있는 추세이고 혼전 출산과 가정 해체, 경제난 때문이라는 거다.
▷진시황보다 150여 년 앞서 법가를 창시한 상앙은 국경을 넘을 때 신분증을 보여 줘야 하는 법과 연좌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을 신임하던 왕이 죽자마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자기가 만든 법에 딱 걸려 죽임을 당했다. 의도가 선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무서울 수 있다. 내가 만든 법이 내 딸, 내 피붙이의 인생을 좌우한다며 심사숙고했던들 그런 ‘책상머리 법’이 나올 리 없다. 이 법을 발의한 최영희 당시 국회의원 등 48명과 국회 보건복지위 의원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면, 최소한 아기 한 명씩 입양해 키우면 어떨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