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940년 어느 날. 나치독일을 좇아 삼국동맹에 가입하자는 일본 해군장교들에게 한 제독이 책의 이 부분을 찾아 읽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책엔 그 구절이 없다”며 항의했다. 그러자 또 다른 제독이 바로잡았다. “너희 번역본엔 이 11장이 통째로 삭제돼 있으니까.” 그 책은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 독일이 일본인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깨우쳐 준 이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었다.
이건 2011년 일본서 개봉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란 영화의 한 장면. 거기엔 ‘70년 만에 밝히는 태평양전쟁의 진실’이란 부제가 붙었다. 포스터 문구는 ‘여기 누구보다도 전쟁을 반대한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극중 대화는 삼국동맹을 둘러싼 당시 군부 내 갈등을 잘 보여준다. 삼국동맹이란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의 독일이 일본을 세계대전에 끌어들이는 제안. 유럽대륙은 두 나라가 싹쓸이할 테니 아시아는 일본이 손아귀에 넣고 3국이 동맹해 슈퍼파워 미국에 공동대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도 만만찮았다. 핵심은 해군성, 거기서도 야마모토 제독. 그는 전쟁이 외교의 최후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부전론자다. 그런데도 운명은 진주만 공습의 총책임을 진 연합함대사령관으로 그를 데려갔다. 전몰자 246만6000명을 신격화한 야스쿠니신사에 그가 포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거기서 서민―황족이 아닌―중 최고서열(정삼품)이다. 필리핀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극동군사재판에서 1급 전범에 포함됐을 인물이다.
내가 그 이름을 안 건 중학생(1971년) 때다. 단체 관람한 한 할리우드 무비 ‘도라 도라 도라’―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그린 영화―에서다. 까까머리 중학생 뇌리에 그가 일순간 각인된 이유. ‘도라 도라 도라’(공습성공 암호)라는 전문에 모두 ‘반자이(만세)’를 외칠 때 어두운 표정의 그가 한 독백―우리는 잠자는 거인을 깨웠다―에 비친 통찰력 덕분이었다. 목표한 항공모함은 진주만에 없었고 그건 도쿄의 하늘을 전력 10배의 미국에 내준 셈이니 이 전쟁이 스스로 패망을 자초한 오판임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그런 통찰의 배경을 알게 되는데 내겐 40년이 걸렸다. 그건 태평양전쟁 개전 70주년(2012년)을 맞아 나루시마 이즈루가 감독한 이 영화다. 제독이 삼국동맹에 반대한 건 일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동맹 즉시 일본은 미국의 적이 되는데 미국을 절대 이길 수 없어서였다. 그럼에도 동맹은 체결됐고 그는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발령된다. 그날(1940년 9월 27일) 일본의 한 신문 1면 제목은 이랬다. ‘일본을 태운 버스가 드디어 달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 야마모토 제독은 젊은 기자에게 그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는다. “대동아 공영권? 정말로 그런 곳이 있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구먼.”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한다. “눈도 귀도 마음도 크게 열어 세상을 보라”고. 나는 이 제목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1995년 과거사 사죄담화는 번복하며 일본군 위안부 부인에 평화헌법 개정으로 군대까지 부활하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우익 광풍이 삭아들지 않는 한 영원히.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