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한인의 디아스포라 문학 50주년]김환기 교수, 이민 반세기 362편 문학작품 분석
1964년 브라질의 도나 카타리나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 동포. 초기 이민자들은 모두 농업에 종사할 목적으로 남미로 갔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결국 도시로 흘러들러 하층민 노동자로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갔다. 아래는 김환기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펴낸 ‘브라질·아르헨티나 코리안 문학 선집’ 표지. 위 사진 최금좌 교수 제공
고향 떠난 이들의 삶이 누군들 쉬울 리 없겠지만 남미에 정착한 한인들의 고생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층민으로 설움도 많이 겪었고, 다른 나라로 재이민을 간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인 의류사업이 번성하고 뜨거운 교육열로 2, 3세대를 잘 키워 내며 이제 한국계 이민자의 현지 위상도 높아졌다.
남미 이민 50주년을 맞아 최근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나왔다. 김환기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49)가 4년간 현지조사를 벌인 노작 ‘브라질·아르헨티나 코리안 문학 선집’(보고사)을 출간했다. 김 교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이민사회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양산된 문학작품을 모으고, 그 디아스포라 문학에 담긴 사회적 역사적 함의를 짚었다. 김 교수는 일본계 이민사회를 연구하는 일본 호세이대와 공동프로젝트로 이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드러낼 때도 엇비슷했다. 박종하의 시 ‘남미로 오는 기상에서’를 보면 “비행기에 몸을 실어 하늘을 나니/구름이 가로 막혀 지구마저 이별인가”라는 대목이 나온다. 고향을 떠난 안타까움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관조자의 시각으로 풀어냈다. 김 교수는 “이민 초기 소수민족으로 냉대를 받았으나 결국 폐쇄적 민족성보다는 다원주의적 태도로 공존공생을 이뤄낸 역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남미 대자연에 대한 찬양을 담거나 종교적 휴머니즘을 다룬 작품이 많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일본계 이민사회에 우호적 태도를 보인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작품에 일본인들이 등장하는데, 긍정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의 연구를 도운 최금좌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 교수에 따르면, 이는 한인들의 현지 정착에 일본 이민자의 공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인들은 한인보다 60년 정도 앞선 1900년대부터 남미에 터전을 마련했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은 일본말에 능숙한 이가 많았는데, 일본인 이민자들이 말이 통하는 한인들을 적극 도와줬다. 김 교수는 “굴곡진 역사를 공유한 양국이지만 머나먼 지구 반대쪽에서는 서로가 동질감을 느끼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작품 소재로 의류사업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남미 이민사회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리아타운 봉헤치루를 중심으로 의류를 만들어 팔며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초기에는 저가제품을 대량 생산하며 기반을 마련했지만 현재는 대형 백화점 명품매장에 입점할 정도로 고급화됐다. 최승재의 ‘얼씨구 절씨구’나 안경자의 ‘쌍파울로의 겨울’ 같은 소설은 벤데(외판원) 생활을 하던 초기 이민자의 모습을 담아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김 교수는 남미 이민문학이 번성한 이유로 현지 한글문학회의 활발한 활동을 꼽았다. 브라질은 1970년 브라질한인회의 전신인 한국문화협회가 창간한 ‘백조’를 시작으로 ‘무궁화’ ‘열대문화’ 같은 종합문예지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도 1994년 재아(재아르헨티나)문인협회가 조직된 뒤 동인지 ‘로스안데스문학’을 발간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이민사회의 정체성을 문학을 통해 지키려는 노력이 남미 이민문학이란 독특한 역사적 산물을 낳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