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
무덥고 짜증나는 요즘 같은 날씨에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무서운 영화가 제격이다. 진짜로 무서운 영화는 전기톱으로 사지를 썰어대는 영화가 아니라, ‘내게도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영화 ‘주온’을 보고 오싹해지는 이유는 가부키 화장을 한 허연 얼굴의 어린이귀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덮고 자는 이불 속에 귀신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매우 체감적인 공포 때문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지금부터 최근 내가 가장 무섭게 본 영화들을 소개한다. 이들 영화는 비록 피 칠갑을 하는 장면은 없지만,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창의적이고 변태적인 설정을 담고 있다.
남자는 황혼녘이 되면 마스터키를 사용해 클라라의 아파트에 당연한 듯 들어간다. 그녀의 침대 밑 공간에 누운 채 숨어 귀가한 클라라가 잠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녀가 잠들면 조용히 침대 밑에서 나와 강력 마취제를 뿌린 손수건으로 그녀의 코와 입을 막아 마취시킨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잔다. 동이 트면 남자는 사라지고,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혹은 마취)에서 깨어난다. 남자는 매일 이런 행위를 반복하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
어떤가. 나도 모르는 새 이상한 남자가 침대 내 옆에 누워 잔다니….
이걸로 약하다면 14일 개봉한 ‘숨바꼭질’을 강력 추천한다! 신인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치밀하고 경제적이고 안정된 연출력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아파트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마음에 품어보았음직한 끔찍한 상상들을 고스란히 재연한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①밤이다. 엘리베이터에 홀로 탄 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까만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얼굴을 완전히 가린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함께 탄다. 층수 버튼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남자. 공포에 질린 내가 ‘9층’ 버튼을 누르자, 남자는 돌연 ‘10층’ 버튼을 누른다.
③괴한이 미친 듯이 아파트 문을 두드리면서 열려고 한다. 경비와는 통화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자물쇠가 간신히 버텨준다. 문 밖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용기를 내어 현관문의 조그만 유리구멍을 통해 밖을 살펴보는 나. 아무도 없구나 하고 안도하는 순간, 괴한의 팔이 현관문 밑 우유투입구를 통해 쑥 들어와 내 발목을 잡는다. 으악!
④드디어 어머니가 아파트를 찾아왔다. 어머니의 소리를 듣고 괴한은 도망쳤다.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 너무도 반갑고 안심이 되는 마음에 어머니를 얼싸안았다. 순간, 아파트 복도 반층 위 계단에서 쭈그린 채 나를 노려보던 괴한. 그는 아파트 문이 열리는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려온 것이다. 문이 열린 틈을 타 괴한은 ‘다다다다’ 하는 발걸음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이 정도로는 더위가 물러가지 않는다는 강심장 독자들을 위하여 2009년 작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마지막으로 추천한다.
잠든 사이 벽에 걸린 액자가 깨지는 등 집안에 뭔가 의심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직감한 아내와 나. 비디오카메라를 침실에 설치해 잠자는 동안의 침실을 촬영한다. 아침에 일어나 녹화된 테이프를 틀어본다. 귀신같은 건 없었다. 다만 새벽에 스르르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난 아내가 잠든 내 앞에 선 채 고개를 숙여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내는 꼿꼿이 선 자세로 3시간이 넘도록 나를 내려다보다 다시 시체처럼 잠든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