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짬뽕’ ★★★
연극 ‘짬뽕’에서 카운터 직원 역을 맡은 채송화(왼쪽)와 배달원 역의 김선덕. 극단 산 제공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무인도에 갇힌 채 100년 동안 매일 싸워 온 두 거인이 잠시 다툼을 멈추고 주저앉아 했던 말.
작은 일을 계기로 대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현실세계에도 종종 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보스니아 시찰 중 세르비아인에게 살해됐다. 불안한 정국을 수습할 방안으로 전쟁 발발을 갈망하던 오스트리아는 주저 없이 “세르비아를 응징하겠다”며 전쟁을 선포했다. 이렇게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으로 5년 동안 세계 30개국에서 30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더 멀게는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이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방문했다가 첫눈에 반한 왕비 헬레나를 납치해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쟁이 벌어졌고, 결국 트로이는 멸망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짬뽕 두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는 설정 외에 흡인력이 도드라지는 부분은 없다. 요절복통 해학이나 가슴 먹먹한 감동을 기대했다면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순박한 음식점 식구들이 자신들의 뜻과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되는 이야기도 2004년 동숭무대소극장 초연 때와는 달리 신선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오히려 톡톡 튀는 장치를 배제한 이야기 흐름에서 조미료를 절제한 소박하고 개운한 국물 맛이 슬며시 배어 나온다. 이 공연은 5월에 열린 10주년 기념공연의 앙코르. 10년 동안 팀워크를 다져온 배우 28명의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이 드문드문 엿보이는 빈틈을 넉넉히 메운다. 무겁고 아픈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뤘지만 관객에게 복잡한 의미 부여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 없이 즐기다 나와도 뒷맛 느끼할 걱정 없는 소품이다.
: : i : :
윤정환 작·연출, 윤영걸 김원해 최재섭 김준원 이건영 정수한 정태민 서성종 임한창 강수영 등 출연. 8일까지 서울 대학로 달빛극장. 1만∼2만5000원. 02-6414-7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