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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상속과 DNA

입력 | 2013-08-23 03:00:00


CJ그룹은 지난달 이재현 회장이 만성신부전증과 함께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CMT)를 앓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차명 운용하면서 546억 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국내외 회사자산 963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수감 중일 때다. 이 회장은 28일로 예정된 신장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석 달간의 구속집행정지에 들어갔다. CMT는 손과 발의 근육이 점점 위축돼 심하면 보행에 도움을 받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돌연변이성 유전 질환이다.

▷영어로 ‘유전적 체질’과 ‘상속 재산’은 같은 단어(inheritance)다. 미국의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상속이 자녀의 장래를 망친다”고 믿는 거부(巨富) 15명을 소개했다. 미국의 주식왕 워런 버핏은 “아이들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낄 만큼만 주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은 안 물려준다”고 말해왔다. 배우 청룽은 아들 제이시에게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며 “능력이 있으면 스스로 벌 것이고, 없으면 내 돈만 날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이들 거부가 택한 것은 기부다.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저녁을 먹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부문화 위축을 걱정하다 억만장자들을 초청해 아예 공개 기부선언을 시키기로 했다. 살아생전에 또는 사후에 재산의 최소한 절반을 기부하도록 하는 ‘기부 서약(Giving Pledge)’ 운동이다. 그 덕분에 거부의 자손들은 재산보다 값어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가까이서 보고 체질화할 수 있게 됐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는 보통 부모도 방대한 유전자는 물려준다. 맬컴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을 연습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다. 하지만 그 분야의 DNA가 없으면 탁월한 전문가는 될 수 없다고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일침을 가했다. 부모로부터 재산은 상속받지 못했다 해도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능력을 받았으면 감사할 일이다. 상속 못 받았다면? 남보다 1만 시간 더 투자하는 건 당신 몫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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