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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보편성의 또 다른 얼굴, 윤리적 폭력

입력 | 2013-08-24 03:00:00

◇윤리적 폭력 비판/주디스 버틀러 지음·양효실 옮김/251쪽·1만7000원/인간사랑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그는 보편자가 개별자를 억압하는 순간 도덕과 윤리가 시대착오적 폭력으로 변질된다면서 나(주체)와 너(타자)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타자에 대한 책임성을 실현해 가는 설명가능성(accountability)에서 새로운 윤리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인간사랑 제공

먼저 책 제목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폭력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란 소리일까, 아니면 ‘윤리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란 소리일까. 전자라면 너무도 당연해 중언부언처럼 느껴지겠지만 후자라면?

이 책의 저자가 주디스 버틀러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57)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후자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상가임에도 프랑스 철학가들 뺨치게 난해한 글쓰기로 유명한 그의 책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통념을 되풀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젠더 트러블’(1990년)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이론가가 된 버틀러는 사실 헤겔 철학의 프랑스 수용사로 박사논문을 썼다. 또 영국 존 오스틴의 언어철학, 독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프랑스 푸코의 구조주의 이론을 횡단한 사상가라는 점에서 그를 단순히 여성학자로 규정할 순 없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 성(性)정체성 문제에 천착한 그는 2000년대 들면서 성을 뗀 정체성 문제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정초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 보편성과 확실성에 기초한 남성적 인간(man)의 확고한 정체성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양성적 사람(the human)의 주체적 실천을 통해 선택되고 형성되는 유동적 정체성에 대한 연구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던 2002년 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스피노자 강연과 같은 해 가을에 이뤄진 독일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의 아도르노 강연 성과물이다. 스피노자는 근대이성을 상징하는 데카르트의 코지토(보편적 이성에 기초한 독립적이고 자율적 주체)에 맞서 코나투스(생존 욕망에 기초한 연약하고 유한한 주체)의 윤리론을 펼쳤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끈 아도르노는 추상적 보편성 내지 집단적 에토스(관습과 믿음)가 윤리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상황을 폭력적이라고 표현했다.

버틀러는 이 두 사람의 윤리론을 지렛대로 삼아 인식론적 허무주의와 도덕적 상대주의를 넘어서는 탈근대 윤리학을 정초하려 한다. 여기엔 헤겔의 인정욕망,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푸코의 구조적 폭력 비판, 주체 안의 타자성을 강조한 레비나스의 윤리학, 유아기 경험의 각인효과를 강조한 라플랑슈의 정신분석학이 함께 넘실거린다.

이를 통해 자율적이고 능동적 주체에 의한 해방이라는 근대윤리가 자신도 모르는 나에 대한 규정을 통해 나 아닌 타자를 억압, 배제, 살해했다는 점에서 총체적 파국을 맞았다고 그는 선언한다. 근대 윤리의 이런 폭력성 비판은 무지하고 무능한 나를 인정하고 내 안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타자를 배려하는 새로운 윤리학의 가능성 탐색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그게 너였니?”라는 타자의 질문에 대한 성실한 응대를 통해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나를 내가 행한 책임의 담지자로서 승화시키는 상황적이고 주체적 선택으로 이뤄진다. 저자는 이 새로운 윤리학을 설명가능성(accountability)으로 호명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giving an account of oneself)’란 표현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듯 설명가능성이란 개념에는 내 설명을 수신한 상대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영웅적 주체로서 나의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는 근대적 책임(responsibility) 윤리와 달리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너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겸손과 대화의 윤리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