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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시원 달콤 4000년… 아이스크림 넌 누구니

입력 | 2013-08-24 03:00:00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로라 B 와이스 지음/김현희 옮김/304쪽·1만6000원/휴머니스트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식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세계적인 정치가와 예술가, 문학가도 아이스크림을 예찬했다. 사진은 1960년 파리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여성. 휴머니스트 제공

‘아이스크림 천하/그는 여름의 여왕 애인의 키스보다 한층 더 그리운 여름 하늘 더운 날 아-스구리 맛/계급성 풍부한 그들의 종족…’ 1930년대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 이토록 관능적이었다. 먹을 것 귀한 시절이었으니 아이스크림을 맛본 기분이 오죽 짜릿했을까.

지금도 아이스크림은 전 세계 누구나 좋아하는 만인의 애인이다. 달콤한 맛은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고, 금방이라도 녹을세라 마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도도함도 매력이다. 먹고 나면 뇌의 측좌핵을 자극해 쾌락까지 느끼게 해주니 이런 사랑스러운 애인이 또 있을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아이스크림 마니아였고, 어린이날을 만든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빙수를 많이 먹기로 유명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처럼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긴 미술가도 많다.

무더운 여름 최고의 애인이 되어주는 그의 과거를 샅샅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미국의 언론인인 저자가 유럽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맛보고 조사한 아이스크림의 역사다.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곧 얼음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고대인은 겨울에 채취한 얼음 속에 여러 가지 맛을 내는 재료를 넣어 먹었다.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얼음 저장고가 있었고, 우리 역사에서도 신라시대에 경주에 얼음 저장고가 있었다. 우유가 든 얼음과자를 처음 즐긴 사람은 당나라 황제들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아이스크림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는 게 많은 음식역사학자들의 추정이다. 이것은 얼음이나 눈에 설탕과 과일즙, 우유를 섞어 얼린 소르베토였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은 생계를 위해 유럽과 북미 전역의 거리에서 값싼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아이스크림 제조기술을 퍼뜨렸다.

미국의 아이스크림 체인 데어리 퀸은 1938년 설립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데어리 퀸 매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 휴머니스트 제공

유럽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을 대중적으로 진화시켜 발 빠르게 산업화한 것은 미국이다. 1843년 미국인 낸시 존슨이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발명한 이후 아이스크림은 급격히 산업화 대중화됐다. 그리고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아이스크림콘이 첫선을 보였다. 1930년대 데어리 퀸, 1940년대 배스킨라빈스 같은 아이스크림 체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가족 단위의 소규모 아이스크림 노점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책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아이스크림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번역본에 별도로 ‘특집-한국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실은 점이 눈에 띈다. 이 책을 감수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특집을 집필했다. 그에 따르면 1900년 이후 재조선 일본인들의 주도로 경성 시내에 빙수점이 생겨났다. 1920년대에는 동아일보에 ‘좋은 아이스크림 만드는 법’이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아이스크림이 유행했다. ‘아이스케키’ ‘삼강하드’ 같은 추억의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현재 한국의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원에 이르고,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아이스크림을 많이 사먹는 나라다.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실려 시각적으로 즐겁고, 책을 읽는 내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 미각적으로도 즐거운 책이다. 다양한 아이스크림 요리법도 덧붙여 정보를 준다. 하지만 저자가 소재의 달콤함에 기대 역사서로서의 엄밀함에는 소홀한 것 같아 아쉽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듯하다’는 애매한 추정이 많고, 아예 감수자가 저자의 오류를 지적한 부분도 몇 군데 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