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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MB5년]“우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입력 | 2013-08-24 03:00:00

홍준표 돌직구 맞은 MB, 비서관회의서 물컵 내리치며…




2011년 9월 30일 열린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 예정에 없이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의 도덕성과 소명의식을 역설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동아일보DB

《 홍준표 대표, “대통령은 청와대 밖에서 만난다. (웃으며)그러니까 기자들이 '청와대 들어갔다 오셨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주로 주말에 만났는데 어느 날 '이제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골프 치러 갑니다'라고 하니까 '야, 네가 부럽다'고 하더라.” (2011년 12월 6일 한나라당 출입기자 정보보고) 》

김동철 의원=“이명박(MB) 정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입니까?”

김황식 국무총리=“최근 친인척이라든지 측근 비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상실됐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7월 18일 국회 본회의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 민주당 김동철 의원의 질문에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근거가 상실됐다.’ 김황식의 답변은 법률가다운 절제력을 갖추면서도 뼈아픈 자기반성을 담고 있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MB가 자부심 하나로 내뱉은 이 말은 거꾸로 이명박 정부를 두고두고 옥죄는 덫이 됐다. MB가 2011년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발언한 이후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틈날 때마다 이 말을 인용하며 MB 정권을 비웃었다.

특전사 출신의 어느 중사가 트위터에 ‘가카 ××’ 같은 욕설로 상관(대통령)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을 때, 군 검찰은 이 중사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을 인용한 것도 문제 삼았다. 그 말을 트위터에 올린 동기 역시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투였다. 심지어 ‘(도덕적이 아니라)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이 원래 표현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등장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김황식은 마치 법관이 판결을 내리듯 “근거가 상실됐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권력문화로 볼 때, 국무총리의 국회 답변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소신발언이라면 소신발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SD) 의원까지 구속된 마당이었다.

MB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성인군자도 입에 담기 힘든 발언’을 한 걸까?

확대비서관회의가 있던 그날 아침, MB는 청와대 안가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조찬을 함께했다. 홍준표의 고려대 선배인 김효재 정무수석비서관이 만든 자리였다. 김효재는 가끔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주로 주말을 이용했는데,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홍준표는 그날도 MB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MB에 대한 홍준표의 애증(愛憎)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홍준표=“각하, 제가 공직생활 30년 중 무려 25년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 척결하는 데 보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전두환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직접 수사했고, 노태우 대통령 퇴임 직후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을 제 손으로 잡아넣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차남인) 현철이의 전횡과 몰락을 직접 목격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홍삼트리오(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 중 2명이 구속될 때도 제가 저격수 역할을 했습니다. 노무현 당선 축하금 때도 그랬고….”

MB=“….”

홍준표=“(잠깐 숨을 돌린 뒤 MB를 똑바로 쳐다보며) 각하, 이 정권도 곧 터집니다. 대강 누구누구인지도 압니다. 각하가 워치(감시)해야 합니다. 내년부터 터집니다. 각하 재임 중에 감옥에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각하는 식물대통령이 됩니다.”

MB=“(얼굴이 일그러지며) 나는 돈 안 받아!”

홍준표=“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친인척과 주변은 다릅니다.”

MB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홍준표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냥 “나만 깨끗하면 되지 뭐…”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선 때 경선캠프 대운하추진본부 부본부장을 지낸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 ‘50년 지기(知己)’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된 게 2009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불과 열흘 전엔 대선캠프(안국포럼)에서 메시지팀장을 지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이국철 SLS 그룹 회장으로부터 10년간 10억 원의 금품을 받아왔다는 시사잡지 보도가 터졌다. 바로 보름 전쯤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 의혹을 받던 김두우 홍보수석비서관이 사표를 냈고(비록 나중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홍준표에 대한 노기(怒氣)가 풀리지 않았다. “홍준표 이 새끼가 대통령을 협박해!”

MB는 확대비서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청와대 본관으로 직행했다. 이날 회의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주재하는 자리였다. MB가 참석한다는 예고는 없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회의가 끝나가고 있었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공직자는 도덕적 기준도 높고 사적인 생활도 없는 고통스러운 기간을 통해서 긍지와 보람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점을 생각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중략) 가진 사람들의 비리가 생기면 사회가 좌절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곳이 청와대다.”

MB는 물컵을 탁자에 내리치며 청와대의 도덕성과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MB가 물컵을 집어 던지며 흥분했다더라”는 소리도 흘러 나왔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한 비서관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라며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전두환 민정당, 노태우 민자당, 김영삼 신한국당, 이회창 한나라당으로 이어져오는 구(舊) 여당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불법 대선자금이었다. ‘태생적’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고질병이었다. MB는 그 불법의 고리를 끊었다는 자부심이 충만했다.

당선 직후 전경련을 가장 먼저 찾은 것도 그런 자부심 때문이었다. MB는 이건희 삼성, 정몽구 현대자동차, 구본무 LG 등 재벌 회장들을 향해 “여러분 중에 나한테 단돈 100만 원이라도 갖다 준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없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당선 후 제일 처음으로 여러분부터 찾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임한 이후에는 정주영 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일화까지 소개하며 측근들을 단속했다. 현대그룹이 비록 민간기업이지만 임원들 부인의 사생활까지 감찰할 정도로 내부감시망이 철저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어느 날 편집국장들의 저녁 자리에 갔다가 박태규 씨를 만났다. 나중에 저축은행 로비스트로 등장하는 바로 그 박태규다. 이동관은 기자 시절부터 박태규를 알고 지냈다. 김두우도 그랬다. 함께 만날 때도 있었다. 그 시절 박태규는 그냥 기자들을 좋아하는 정치권의 마당발이었다.

자리를 둘러보니 몇몇 장관도 눈에 띄었다. 박태규가 즐겨 사용하던 ‘사교 방식’이었다. 장관이나 고위공직자들에게는 언론사 간부들이 온다고 하고, 언론사 간부들에게는 장관들이 오기로 했다고 연락해 술자리, 밥자리를 만드는 식이었다.

저녁 자리의 화제가 대선 당시 시끄러웠던 MB의 사생아 이야기로 이어지자 박태규는 열심히 MB를 변호했다. 이동관은 다음 날 MB에게 전날 저녁 얘기를 보고했다. 그런데 MB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MB=“(혀를 차면서) 이 수석, 박태규가 누군지 알아? 내가 서울시장할 때 나한테 사생아가 있다고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놈이 바로 그놈이야! (홍보수석이라는 사람이) 뭐 하러 그런 사기꾼 같은 놈을 만나고 다녀!”

이동관은 가슴이 철렁했다. 즉각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몇몇 수석비서관에게 ‘MB한테 야단맞은 얘기’의 전말을 전했다. 말하자면 MB를 대신해 ‘박태규 경계령’을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비서관급이었던 김두우에게는 전파하지 못했다. 이동관의 후일담. “그때는 저축은행 사건이 터지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박태규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더라’는 얘기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실장하고 관계 수석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내 책무는 다했다고 생각했다.”

정정길도 그 후 저축은행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이동관이 전한 ‘MB의 박태규 경계령’을 기억에 떠올렸다. 당시엔 그렇게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박태규가 저축은행 로비사건의 핵심 고리로 등장하고, 믿었던 김두우까지 박태규와 어울린 것으로 드러나자 MB는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홍준표까지 나서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분노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은 짓뭉개진 자부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MB의 자기 다짐이었다. 한편으론 자기 뜻을 몰라주는 일부 참모들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당시 홍보수석실의 참모들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아니 알지 못했다. 대변인실은 ‘대통령 말씀’을 액면 그대로 브리핑했고, 언론은 대통령의 말에 경악했다.

MB는 기가 막혔다. “내가 직접 홍보까지 해야 돼?”

김창혁 선임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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