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주년… 전문가 설문조사 동아일보 2013년 8월 5일자 B1면
Q.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20주년을 맞아 제도 보완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어떻게 도입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 생활의 어떤 면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금융실명제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갈지 알고 싶습니다.
○ 세 번의 시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기 위한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1982년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첫 번째 시도가 있었지만, 비실명거래로 이익을 얻는 집단의 반발로 사실상 무기한 유보되었습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시도 역시 시기상조론과 여러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 명령’으로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었습니다.
○ 다른 나라의 금융실명제
금융실명제 실시 첫날인 1993년 8월 13일 고객들이 은행 창구 앞에서 실명을 확인하기 위해 통장과 함께 주민등록증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금융실명제는 우리 삶 곳곳을 바꿔 놨다. 동아일보DB
반면 유럽과 미국은 비실명거래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실명거래 관행이 정착되어 있어서 굳이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자금세탁 방지 측면에서 금융실명제를 다루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36개 국가와 지역조직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는 금융회사들에 고객 확인 의무를 부여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금융실명제 실시 1년 후에 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뒷돈 거래가 감소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현금 보유 성향이 다소 높아지고 내구재, 외식, 여행 등에 대한 지출이 다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명계좌에 입금해 뒷돈 거래가 드러나느니 차라리 소비지출에 써 버리려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채 같은 사금융 시장이 위축되면서 서민들과 중소기업이 은행과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금융거래를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다양한 금융상품이 개발됨에 따라 우리나라 금융이 선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한편 금융실명제로 인해 금융계좌를 개설할 때 번거로운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늘어났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혼자 돼지저금통을 들고 동네 은행에 저금하러 간 기억들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따라가지도, 복잡한 서류가 없어도 쉽게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미성년자가 혼자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동행하거나 실명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서류를 지참해야 합니다. 엄격한 실명확인 절차로 인해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나 유학생들이 국내에 계좌를 만들기가 더 번거로워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금융실명제가 종합소득과세를 통해 공평한 과세의 기틀을 마련하고, 지하경제 양성화, 정치자금의 투명화, 공직자 재산 공개를 가능하게 하는 등 다양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강맹수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