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대사관저 요리사들 “머슴-식모 취급” 고발 빗발
외교부는 ‘현대판 관노비’라 불리는 해외 한국대사관저 요리사의 운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본보가 관저 요리사의 실태를 지적한 뒤 해외 각국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관저 요리사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본보 24일자 10면 해외공관 요리사들 “나는 한국대사관 노비였다”
외교부는 맹장수술을 받은 요리사를 바로 해고했다는 주장이 불거진 아프리카의 한 한국대사관에 감사 직원을 파견해 실태 조사를 마쳤다. ‘3주 동안 요리사를 감금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한 한국대사관에 대해서도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동아일보 보도 내용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공관 요리사를 포함한 행정직원의 처우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해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본보 보도 이후 관저 요리사들의 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관저 요리사는 외교부 소속 행정직원 신분(계약직)으로 해외에 파견되지만 사실상 ‘머슴’이나 ‘식모’ 취급을 받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아프리카의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였던 김모 씨는 “요리 외에 청소, 현지인 감독 등 잡일에까지 동원됐고 휴일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취재팀과 만나 “아침식사를 끝내면 잠깐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대사 부인이 자주 연락을 해와 ‘현지인이 청소하는 걸 관리·감독하라’고 지시했다”며 “쉬는 날 밖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자 대사가 ‘내가 집 지키는 사람이냐. 쉬는 날이라도 오후 6시까지는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해외 대사관저에서 8개월 동안 근무했다는 A 씨는 본보 보도 직후 e메일을 보내와 “대사는 자신이 현지에서는 대통령이라며 권위를 세운다”며 “쉬는 날도 없이 새벽까지 일을 시키는 바람에 몸져눕게 돼 결국 일을 그만두고 8개월 만에 귀국했다”고 말했다.
○ “식사 때마다 호통 치며 인격 모독”
그러나 해당 국가 대사는 본보와의 국제전화에서 “B 씨가 요리에 신경을 안 쓰는 데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며 “정당한 계약 해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요리사 숙소는 관저 별채에 있다. 계약 해지 이후에는 B 씨가 본관에 올 일이 없어 열쇠를 되돌려 받은 걸 ‘반감금’이라고 과장해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이 대사관에 감사 직원을 파견해 실태 조사를 하기로 했다.
○ 서면통고 7일 만에 해고하기도
관저 요리사는 한식조리사자격증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고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처우도 나은 편이다. 교민 가운데 관저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한식조리사자격증을 따러 일시 귀국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직종이다. 대사관저에 들어가면 거주 비용도 별도로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관저 요리사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해고당할까 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리사는 행정직원이지만 대사와 개별 계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해고도 대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여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가 입수한 한 관저 요리사의 계약서에는 ‘고용주는 고용원이 다음 각 호의 사유에 해당할 때에는 고용 만료 전이라도 고용원에게 30일 전 서면통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거나 △보안상의 중대한 위해를 범하거나 범할 소지가 있을 경우 △근무평정 결과가 불량할 때 등을 계약 해지 조건으로 들고 있다. 사실상 대사 뜻대로 요리사를 자를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일부 대사관은 요리사를 서면통고 7일 만에 해고해 계약 조건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