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좌절은 없다”… 독일서 ‘마지막 도전’ 로드맵 구상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66)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갑작스럽게 큰형수상(喪)을 당해 23일 오후 독일에서 급히 귀국하자마자 빈소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성당으로 달려온 손 고문은 통곡했다고 한다. 10남매의 막내로, 어렸을 때 모친을 여읜 손 고문에게 큰형수는 어머니나 다름이 없었다.
24일 빈소에서 만난 손 고문은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손학규계 의원들은 “손 고문이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측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는 의욕이 강하다. (대선에서) 세 번이나 좌절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 김한길도, 안철수도 “손에 손 잡자”
김 대표는 오후 5시경 손 고문을 만나러 왔다. 그는 서울시청 앞 광장 장외(場外)투쟁과 관련해 “이번 여름은 특히 더워서 ‘손 고문이 대표로 계실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무효화 장외투쟁을) 겨울에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했던 분들은 ‘그것도 아니다’고 하더라”며 전현직 대표로서 동병상련의 기억을 부각시켰다. 손 고문은 묵묵히 웃기만 했다.
30분 뒤 방문한 안 의원은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자신의 집으로 축하 난을 보내 준 손 고문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 상황이 지난해 대선 때보다 훨씬 열악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고문님 혜안이 필요할 때”라며 우회적으로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손 고문은 “나는 그냥 쉬고 있으니까…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지에 대한 참고의 기회를 얻고 있다”고만 했다.
안 의원과의 연대설은 4·24 재·보선 때부터 끊이지 않아 왔다. 그러나 손 고문은 6월 독일을 방문한 손학규계 의원들에게 “지금은 민주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 밖을 기웃거릴 때가 아니다”며 줄기차게 민주당 중심론을 강조했다. 당시 손 고문을 만났던 한 인사는 “손 고문은 ‘내가 어떻게 안철수 신당에 가나’라고도 하더라”며 “손 고문이 독일 연수에서 가장 먼저 연구한 주제도 ‘유럽의 제3정당 성공과 실패’였다”고 했다. 손 고문이 유럽에서조차 제3정당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손 고문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지 않았나. ‘또 어디로 옮긴다고…’ 하는 시선에 부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손 고문은 빈소에서 만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정치적 언급은 삼갔지만 독일의 통합 정신은 강조했다고 한다.
우원식 의원이 24일자 동아일보 커버스토리 ‘왜 일본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갈까’를 언급하자 손 고문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폴란드에서 과거 나치 저항운동을 했던 희생자들에게 속죄하는 것이 통합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런 정신이 독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비스마르크와 사민당은 적대적 관계였지만, 사민당의 이념과 정책 기반인 복지국가의 문을 연 것은 비스마르크”라고도 했다. 다음 달 22일 독일 총선과 관련해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집권을 계속할 확률이 90%인데 집권 여부보다 어떤 당과 연대하느냐가 쟁점”이라며 ‘정책연대’에 관심을 보였다.
손 고문은 요즘 독일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복지, 환경, 노동, 에너지, 정치구조 등이 미래 한국의 밑그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손 고문은 1월 15일 독일에 도착한 뒤 전문가들을 만나고 현장을 견학할 때마다 두툼한 대학노트에 내용을 쓰고 있다.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수치를 외울 정도가 됐다고 한다.
손 고문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손 고문이)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했다.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김영철 대표는 “2017년 대선의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즉각적인 정계 복귀보다는 다시 차기 대선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손 고문의 대중성 부족을 엘리트주의와 연결짓는 측근들도 적지 않다. 한 측근은 “선비의 고민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균형감 있게 갖춰야 하는데 결단이 필요할 때는 체통, 원칙을 따지고 멈칫하면서 ‘고민하는 서생(書生)’ 이미지가 부각됐다”고 말했다.
7개월여 독일 체류 기간 중 손 고문은 그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깊이 반성한 듯하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지도자로서) 사람들 선두에 서는 것만이 아니고,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 같다”고도 했다.
손 고문은 26일 발인이 끝난 뒤 다시 독일로 떠나 현지 생활을 정리하고 다음 달 하순 귀국할 예정이다. 과연 어떤 정치적 메시지와 화두를 던질까.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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