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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신석호]‘북한 역사 바로세우기’ 한미공조 첫 결실

입력 | 2013-08-26 03:00:00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가 공간(公刊·공식적으로 발행되는) 문헌의 행간을 잘 읽는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김정일 선집’ 같은 최고지도자의 발언록이나 노동신문 등이 발표하는 글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북한 당국은 ‘김 씨 왕조’를 찬양하고 체제를 미화하기 위해서라면 종종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 은폐하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의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사에서 시작해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북한 현대사의 이곳저곳에는 외부 세계가 검증해 바로잡고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 작업은 북한이라는 국가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되어야 할지 모른다. 미국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22일 공식적으로 문을 연 ‘한국 현대사 포털’은 그 작업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포털은 윌슨센터가 2006년부터 진행해 온 ‘북한 국제문서 조사사업’의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다. 과거 평양에 주재했던 동유럽 사회주의 동맹국들과 중국을 비롯한 수십 개국 외교관들이 현장에서 보고 듣고 확인한 사실을 본국에 보고한 ‘외교 전문’을 발굴해 모은 것이다. 사이트에서는 ‘북한 핵 개발사’나 ‘김일성 대화록’,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등의 주제별로 세계 40여 개 문서창고에서 나온 외교문서들을 직접 보고 내려받을 수 있다.

이번 사업의 책임자인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국장(역사학 박사)은 22일 기자회견에서 “포털은 미국이 아닌 한국의 사업”이라며 한국 측 파트너들에게 공을 돌렸다. 실제 북한대학원대는 교수들이 미국에 파견돼 문서 발굴에 참여했다.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문서 발굴과 포털 구축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했다. ‘북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한미공조인 셈이다.

한미동맹 체결 60주년이 된 올해, 양국 정부는 화려한 기념행사와 각종 사업을 통해 환갑을 맞은 양국 관계를 축하하고 다가올 60주년의 비전을 함께 세우느라 분주했다. ‘한국 현대사 포털’은 양국의 민간 싱크탱크와 학계, 그리고 ‘반관반민’의 공공외교가 함께 힘을 모아 탄생시킨 동맹 60년의 뜻 깊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북한사 정립은 통일의 문화적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센터는 북한 외교 문서를 계속 수집, 번역해 1주일 단위로 포털에 공개할 예정이다. 자료 부족을 무릅쓰고 북한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해 온 학자들이 포털의 단골손님이 될 듯하다.

‘진실은 언젠가는 알려진다’는 경고를 통해 북한 당국이 조금이라도 덜 왜곡된 역사를 기술하도록 하는 것도 포털의 순기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