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당 300만∼1000만 ‘명품’… 깨뜨린 8개 값 3000만원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 등장하는 도자기. 이 소품은 한일상 도예가의 작품으로 여의주를 물지 않은 용이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실제 가격은 800만∼1000만 원으로 극중 소품으로 나오는 도자기 중 최고가다. 아래쪽 사진은 극중 왕실 도자기를 만드는 분원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광해(이상윤·왼쪽)와 정이(문근영). MBC TV 화면 촬영
소품 도자기의 70%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설립한 ‘도평요’의 대표로 있는 한일상 도예가의 작품이다. 1회 첫 장면에서 어린 정이(진지희)가 선조(정보석)에게 바친 백자와 3회에 등장한 태조발원문사리, 9회 인빈 김씨(한고은)가 명나라 사신에게 뇌물로 건넨 백자가 그의 손을 거쳤다. 도평요에서 완성 작품 200여 점과 초벌구이만 끝낸 미완성품 300여 점까지 시가 1억5000만 원 상당을 소품으로 협찬했다.
한일상 도예가의 작품 가격은 평균 300만 원 안팎. 카메라에 잠깐 비치는 2만, 3만 원짜리 작은 찻잔도 있지만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자기 중에는 1000만 원짜리도 있다. 지금까지 드라마에 등장한 작품 중 가장 고가는 용 그림이 그려진 청화백자. 14회에 등장한 이 백자의 시가는 800만∼1000만 원.
이 드라마는 촬영 현장에서도 철저한 고증을 거치고 있다. 2003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음식을 조리하는 장면에서 자문을 맡은 요리연구가의 손이 배우를 대신해 출연했던 것처럼 ‘정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성형하거나 초벌구이 후 안료 작업을 하는 장면에서는 장재녕 현장 자문가의 손이 대신 등장한다.
도예가들은 제작진이 대본 내용에 어울리는 그릇 디자인을 갖고 오면 제작에 들어간다. 보통 작품 하나에 10∼15일이 걸리지만 촉박한 촬영 일정 때문에 도예가들도 밤샘 작업을 통해 일주일 정도로 시간을 줄인다. 일정이 촉박해 제작이 불가능하면 이미 만들어진 그릇 중 대본의 이미지와 비슷한 것을 사용하거나 거꾸로 대본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광주시와 파주시 등에 위치한 도예가들의 공방에서 용인 드라마 세트장으로 도자기를 옮길 때는 1회 사용료가 100만 원인 무진동차량을 이용하지만 촬영 중 스태프의 부주의로 도자기를 깨는 경우도 있다. 도자기마다 보험을 들어 놓았기 때문에 50% 수준으로 보상을 받는다. 26일 방송될 17회에서는 강천(전광렬)이 도자기 4개를 깨는 장면이 나온다. 리허설 때는 싼 도자기로 연습을 하고 실전에서는 진짜를 깬다. 실수로 깬 것까지 현장에서 깨진 도자기를 모두 합치면 8개. 시가로 3000만 원 정도라는 게 제작진의 말이다.
인사동이나 남대문시장에서 저렴한 도자기를 사서 쓸 수도 있지만 왜 굳이 고가의 작품을 고집하는 걸까. 곽정훈 MBC 소품팀장은 “질이 낮은 도자기를 소품으로 쓰면 전문가들이 다 알아본다. 드라마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소품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한일상 도예가는 “촬영 중 작품의 파손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전통 도자기 시장이 굉장히 침체돼 있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