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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처럼 젖어드는 그 노래… 장필순이 돌아왔다

입력 | 2013-08-27 03:00:00

■ 7집 ‘수니 세븐’ 들고 11년만에 복귀




6집 앨범의 상업적 실패 이후 제주도에 은둔한 지 8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장필순. 20년 전 그의 노래 ‘방랑자’ 가사처럼 ‘반겨줄 이 찾는 시인의 노래’를 우려내 빼곡히 담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가수 장필순(50)이 제주에 내려가 산 지 9년째다.

그는 1989년 1집 ‘어느새’부터 인기를 얻었다. 1997년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2002년 6집 ‘수니 식스’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게 정점이자 최저점이었다. 6집은 특히 상업적으로 크게 실패했다. 2005년 음악적 동지 조동익과 함께 제주시 애월읍에 거처를 정했다. 두 음악인이 ‘은둔 중’이라는 말이 음악계에 돌았다.

27일 장필순은 아이언맨처럼 돌아왔다. 이날 낸 7집 제목은 ‘수니 세븐’. 11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카페에서 만난 장필순은 11년이 아니라 11일 전에 만난 사람 같았다. 안개처럼 허스키한 특유의 목소리가 변함없었다. 스며드는 듯하다 듣는 사람 가슴팍을 콕 찌르는 노래였던 그 안개.

“2005년 제주에 내려갈 땐 그저 지쳐 있었어요. 아무런 계획도 없었고, 다 접고 싶은 마음뿐. 6집에 최선을 다했는데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죠. 서운함보다 좌절감이 컸어요.” 그래서 “덜 먹고 덜 입어도 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래도 그렇지, 왜 이렇게 오래 쉬었나. 텃밭에 고추 심고 멍멍이 여섯 마리랑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며 그는 웃었다. 2009년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끈질긴 권유로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라는 CCM(현대식 기독교 음악) 앨범을 만든 것이 장필순 심지에 불을 붙였다. “연(緣)까지 끊을 순 없더라고요. 음악 선후배가 제주도 집에 계속해 찾아오고, 자꾸 음악을 다시 해보라고 하니까.”

그중엔 가수 이효리도 있었다. “재작년에 유기견 캠페인 송을 만들 때 처음 만났어요. 의외였죠. 제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았고. ‘다른 색깔’의 음악에 애착이 많은 친구라는 것도. 저희 집에 왔을 때는 힘든 고비를 넘기고 지쳐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룻밤을 자고 나서 ‘음악 하면서 평생 그렇게 편하게 잔 적이 몇 번 안 된다’고 했어요. 효리 씨가 음악 하던 공간들이 살벌하잖아요. 음악판이란 게 여자들이 견뎌내기에 쉽지 않은 구역이잖아요.”

그는 요즘도 ‘효리 씨’가 제주에 내려오면 꼭 만난다고 했다. 정작 장필순은 결혼을 안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음악 동지(조동익)가 있는 것만으로…. 이만한 솔메이트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장필순은 새 앨범에서 선명한 멜로디와 포크 록의 감성을 이어가면서 신선함을 더했다. 조동익이 프로듀스했고 조동익 이규호 박용준 고찬용 그리고 장필순이 곡을 썼다. 도시인의 고단한 일상을 다채로운 편곡의 팔레트로 회화처럼 그려낸 ‘1동 303호’는 7분 1초짜리 역작이다.

피아노의 타건 소리가 태초의 울림처럼 화두로 퍼지는 첫 곡 ‘눈부신 세상’부터 마지막 곡(9번) ‘난 항상 혼자 있어요’까지 현대인의 추억과 상실을 다룬 콘셉트 앨범(소설처럼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전개되는 음반)처럼 흘러간다. ‘휘어진 길’에는 조동익의 20대 아들인 조민구 씨가 랩을 넣었다. “녹음의 80%는 제주도 집에서 했어요. 서울의 음악 스튜디오와 제주 집을 인터넷 화상통화로 연결해서요.”

그는 애월읍에서 ‘가수 선생’으로 통한다고 했다. “마을 운동회나 동네잔치 있을 때 노래 좀 해달라고 전화가 오는데, 제 노래를 그런 데서 하면 심각해지지 않겠어요? 하핫.”

장필순은 11월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에서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열고 연말까지 7개 도시 순회공연을 이어간다. 지방 투어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절로 들리는 것 말고 뭔가 찾아서 듣는 이들에게라면 제 음악은 들릴 거라고 확신한다”면서 “앞으로 또 언제 앨범을 낼지는 모르겠다”고 ‘안개’가 웃으며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