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강화 제작설은 ‘조선 태조가 강화 선원사에서 옮겨온 대장경을 보러 용산강에 행차했다’는 태조실록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선원사는 1245년에 창건됐고 이때는 대장경 판각이 90% 이상 완료된 시점이라 강화 제작설은 의심을 받았다. 이후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남해에 분사(分司) 대장도감을 설치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불교서지학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2010년 “대장도감 판본과 분사 대장도감 판본을 조사해 본 결과 두 곳은 동일한 장소였고 그것이 남해였다”고 주장했고 본보는 이를 최초로 기사화했다.
▷박 원장은 27일 남해군에서 열리는 한 세미나에서 판본 전체를 일일이 조사한 종합 결과를 제시한다. 대장경 각 권의 끝에는 간행 기록이 나와 있다. 간행 기록에 분사 대장도감이라고 된 것은 모두 500권이다. 이 중 473권의 목판이 ‘대장도감’이라고 된 네 글자를 파내고 새로 ‘분사 대장도감’이란 여섯 글자를 다시 새겨 끼워 넣었다. 대장도감과 분사 대장도감은 같은 장소였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선원사는 대장경이 남해에서 제작된 뒤 강화성 서문 밖 판당에 옮겼다가 조선 초 해인사로 다시 옮길 때 거쳤던 경유지일 가능성이 높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