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석 전 주싱가포르 대사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일본에 대한 요구는 ①진상규명(국가책임 인정) ②정부의 공식사과 ③위법행위에 대한 배상으로 대변된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진상규명은 고노담화로 이루어졌고,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간에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배상 문제와는 별도로 인도적 견지에서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해결을 도모하였으나 한국 등의 반발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필자는 두달간 도쿄에 머물며 한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의 전직 외교관, 학자, 언론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들의 견해에서 세 가지 점이 주목되었다.
둘째, 한국에 대한 호감도와 무관하게 모든 인사들이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뒤늦게 표면화된 만큼 청구권협정 교섭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우리의 입장에 동감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가 배상 요구를 정식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청구권협정의 예외를 인정하면 다른 과거사 문제도 제기될 것이라는 우려였고, 최근 우리 재판부의 강제징용 피해보상 판결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특히 외교관들은 아시아여성기금으로 일본국민들의 모금 6억 엔에 정부예산이 48억 엔이나 지출되었음에도 평가를 받지 못했음에 상당한 무력감을 피력하였다.
셋째, 배상 요구가 수용되면 일본이 역사적 진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배상 요구가 오히려 사실관계 인정에 대한 일본 입장을 경직시키고 강제성 부인의 토양을 제공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지금은 슬그머니 물밑으로 잠복하고 있으나, 작년 말 제2차 아베정권 출범 직후 고노담화 수정 운운하는 망언이 나온 것도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신고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피해자의 명예를 지키고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 교훈으로 길이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의 강제성과 국가책임 인정’이라는 진상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하다. 제1차 아베내각은 2007년 과거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기술이 없었다는 국회답변서를 채택했으나, 이것이 강제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1993년 고노담화 발표 당시 조사책임자였던 이시하라 노부오 전 관방부장관이 후일 증언하였듯이 당시에도 불법적이었던 강제동원을 애초부터 문서로 남겼을 리가 없고, 설사 일부 있었더라도 패전 후에 모두 파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간 이 문제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시민운동가들과 연구자들에게 높은 경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 비추어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할 필요성은 없는지도 함께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광석 전 주싱가포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