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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우리는 왜 공포물에 매혹당하는가

입력 | 2013-08-27 03:00:00


벡신스키, 무제, 1976년

내가 아는 가장 무서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폴란드 출신의 즈지스와프 벡신스키다. 그의 그림은 의식이 있는 채로 꾸는 악몽처럼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고 오싹한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그림으로 보는 ‘지옥의 묵시록’이다.

이 그림에도 섬뜩하고 괴기한 벡신스키 화풍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불타는 도시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시신들의 파편이 널려있는 거리를 힘겹게 기어가고 있다. 인간이기보다는 상처 입은 한 마리 흉측한 거미를 떠올리게 한다. 팔다리는 앙상하고 몸은 새까맣고 얼굴은 붕대로 감겨 있으며 그 붕대에서 붉은 핏물이 스며 나오고 있다.

지구의 종말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지옥의 유황불을 그린 것일까?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도시를 탈출하는 유일한 인간을 그렸는데도 왜 희망이 아닌 절망감이 느껴지는 걸까?

벡신스키가 공포 그림의 거장이 된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답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은둔형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벡신스키의 작품들은 암울한 데다 제목도 없다. 글자로는 차마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체험했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뜻이다. 공포 소설의 거장인 스티븐 킹은 저서 ‘죽음의 무도’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이 자주 질문하는 것 중의 하나, 이 세상에 현실의 공포가 그렇게나 많은데도 왜 당신은 무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현실의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우리가 왜 공포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벡신스키의 그림에 매혹당하는지 알려준 셈이다. 공포는 사회가 인간에게 억제하라고 요구하는 반사회적인 행동, 성욕, 폭력성이라는 유해가스를 배출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