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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재명]‘착한 여당’이 대통령을 망친다

입력 | 2013-08-27 03:00:00


이재명 논설위원

2011년 12월 15일은 새누리당이 잉태된 날이다. 이날 한나라당은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에 전권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박근혜의 비대위’에 당 최고위원회의의 모든 권한을 넘긴 것이다. 일부에선 “당원이 지도부를 뽑는 정당에서 비대위 설치를 당헌에 명문화한 것은 쿠데타를 합법화하는 조치”라고 반발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이듬해 총선과 대선에서 패색이 짙은 마당에 당의 운명을 내맡길 이는 ‘선거의 여왕’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은 그로부터 49일 뒤인 지난해 2월 2일이었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17년 5개월)에 이어 장수한 한나라당(14년 3개월)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내 권력교체와 재창당 작업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야권의 심판 프레임을 무력화했다. 새누리당은 그해 총선과 대선을 싹쓸이하며 반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대선열차’의 흥행 여세를 몰아 이제 ‘대국(大國)열차’쯤 되는 신작을 선보일 때가 됐건만 지금의 정국은 감동 없는 부조리극뿐이다. 그사이 무엇이 달라졌기에….

주연배우는 변함없이 ‘박근혜’다. 달라진 것은 대선열차의 흥행을 이끈 조연들의 실종이다. 대선열차의 시동은 건 것은 당내 소장파였다. 김성식, 정태근 두 의원이 탈당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며 변화의 물꼬를 텄다. 드디어 때를 만난 친박들도 ‘큰 정치’를 솔선했다. 새누리당이 잉태된 날, 최경환 윤상현 콤비(현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돌직구를 날렸다. 이들은 “당직(黨職) 근처에 얼쩡거리지 말고 친박들은 모두 물러나자”며 친박 2선 후퇴론을 주장했다. 당시 최 의원의 사무총장 기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의총이 끝나자 박 비대위원장은 최 의원에게 “사전에 얘기도 없이 왜 그런 말을 했느냐”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계파로 갈가리 찢긴 집안을 새롭게 추슬러야 하는 박 위원장에게 친박들은 활로를 열어줬다.

이어 닷새 뒤 현기환 의원이 친박 중에서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위원장은 “의정활동을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며 말렸지만 인적 쇄신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현 의원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7일, 최 의원은 또 한 번 박근혜 대선후보의 뜻을 거스르면서 비서실장직을 내던졌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안철수 후보보다 10%포인트나 뒤지자 지도부 퇴진론이 들끓었다. 최 의원이 사퇴 열흘 전쯤 박 후보에게 “제가 물러나겠다”고 하자 박 후보는 “그러면 선거는 어떻게 치르느냐”며 단칼에 잘랐다. 그때 최 의원이 박 후보의 뜻에 따랐다면 김무성 의원과 친이계의 캠프 참여도, 지지층의 외연 확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희생과 소신 위를 달리던 대선열차가 멈춰 섰다. ‘흥행의 역설’이라고 해야 하나. 대선 이후 소장파의 씨가 말랐다.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하던 친박도 사라졌다. “지금 대통령이 문재인이면 좋겠죠?” 같은 상식 밖의 질문으로 권은희(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를 청문회 스타로 키워주는 게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그러니 국가정보원 개혁을 강하게 주문하거나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꼬집는 새누리당 의원이 나올 리 없다.

그사이 새 정부는 역대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인사와 소통의 실패다. 이는 대통령만의 책임이 아니다. 귀와 입을 닫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착한 여당’이 실패의 공범이다. 민주당이 ‘3·15 부정선거’나 운운하며 헛발질을 해대니 천만다행인가. 틀렸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일은 상대편의 실패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다. 비판과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여권은 그 자체가 재앙이다. 민심은 지지율에 취해 안주하는 정당에 늘 채찍을 들었다. 멈추면 파국을 맞는 것은 설국열차만이 아니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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