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박근혜 정부 6개월 정치부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정치인이나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6개월도 좋게 보자면 탓할 일이 없고, 나쁘게 보면 칭찬할 거리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공직자의 성과에 대해서는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건 주권자로서 국민이 갖는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체격이 좋아졌다고 해서 체력이 향상된 게 아닐 수 있듯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그 내용이 튼실한 것은 아니다. 아직 ‘먹고사는 문제’에서 구체적 성과가 없으니 지지율의 수치에 만족해 ‘잘하고 있다’고 규정할 상황은 아니다.
대통령의 6개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면 남북관계와 비리 척결이다. 신뢰 프로세스에 의한 결과라고 단정할 순 없어도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에서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내려놓게 한 건 상당한 진전이다.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대북 여론이 달라진 걸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원칙 고수도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지난 정부 시절 꽉 막혔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재벌 총수들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가 특혜를 베풀지 않고 법대로 처리하고 있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대통령의 공이다.
대통령이 가장 잘못하고 있는 걸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불통’이다. 워낙 외골수라 ‘먹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정치체제다. 삼권분립 체제에선 대통령(행정부)과 입법부 간의 제도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둘 다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화도 일상적으로 요구된다. 입법부의 구성원인 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 없기에 결국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화는 대통령과 야당 간의 대화를 뜻한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무릇 의회주의라 함은 대통령이 야당과 수시로 소통하고, 그 의사를 존중하는 타협정치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파트너로 삼기엔 야당이 쓸데없는 일에 발목 잡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걸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도 야당 대표를 할 때 생각이 달라서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나. 그때의 처지를 반추해 본다면 야당의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어도 그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처한 입장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 ‘처지즘(처지+ism)’이 아니라면 야당 대표를 만나는 등 야당과의 거래와 ‘밀당(밀고 당기기)’을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치학자의 말대로,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 박 대통령이 야당을 계속 배척한다면 입법은 더뎌지고, 정책 효율성은 떨어질 것이다. 이건 한심한 낭비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다. 아무리 대통령 권력이 막강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해도 대통령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입법부, 특히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심을 고려하면 당장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소득 2만 달러의 민주화 시대에는 일방독주가 더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은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과 양보를 통한 타협뿐이다. 취임 6개월이면 그야말로 허니문인데, 야당과 가파른 대치를 벌이고 광장에선 촛불이 켜지고 있는 현실을 박 대통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취임 6개월 동안 새누리당은 역할이 미미했다. 지금의 새누리당에서 공적인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측근들의 ‘윗분 받들기’만 넘쳐났다. 지난 정부 시절 당시 한나라당이 민의를 대변하는 공당다운 존재감을 보인 까닭은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당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당에는 그때의 ‘박근혜’와 같은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당내 개혁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래서는 역동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당의 기능을 감당할 수 없다. 새누리당에 활력을 부여하는 것도 대통령의 숙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