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완 사회부 차장
23일 방영된 tvN의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대만편을 배꼽을 잡고 보던 중 출연자인 신구 씨의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78세 할배가 복잡한 도심의 숙소를 찾는 데 도움을 줬던 평범한 대만인들에 대해 한 말이다.
2년 전 미국으로 연수를 갔을 때 현지 주민들로부터 똑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문을 드나들 때 뒷사람을 위해 손잡이를 잡아주는 사람들, 횡단보도 주변에 보행자가 있으면 멀찌감치 정차해서 먼저 건너라고 손짓하는 운전자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마워요”와 “천만에요”를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1년간의 연수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 귀국했을 때 한동안 역(逆)문화 충격에 시달렸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든 없든 먼저 가겠다고 자동차 범퍼부터 들이대는 운전자, 뒷사람이 다치든 말든 문을 쿵 닫고 가버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총장을 지낸 강성모 KAIST 총장도 역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학문화에 대해 “랜덤 카인드니스(Random kindness)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워낙 사회적으로 경쟁이 심해서 그런지 (미국과) 많은 차이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개입된 ‘계산된 친절’에는 능하지만 ‘불특정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친절’의 문화는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직간접적인 보상이 따르는 계산된 친절 측면에서 한국은 여느 나라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불친절 사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광속으로 유포돼 기업 브랜드에 먹칠을 하는 탓에 친절교육은 직장인의 필수 코스가 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퇴근길에는 보행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마주친다.
한국 사회의 경쟁이 계산된 친절은 확산시키는 반면 랜덤 카인드니스의 가치는 평가절하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이 경제 우등생이지만 사회적 자본이 일천하다는 자성이 나오는 게 우연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공부는 잘해도 인성은 빵점인 헛똑똑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랜덤 카인드니스가 없는 사회에선 구성원 전체가 피곤해진다. 신구 할배는 그걸 걱정하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