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배꼽 빠질 정도로 재미난데 왜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10년 만에야 한국에 들어온 걸까?
개막 이틀째인 24일 저녁 뮤지컬 ‘애비뉴Q’를 보고 나오다 든 생각이다. 공연 담당 기자를 맡고 나서 수없이 들은 말이 “이 시장을 지탱하는 메인 고객은 20, 30대 여성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의 객석 분위기는 유럽 귀족의 모험과 사랑을 소재로 한 ‘스칼렛 핌퍼넬’이나 ‘엘리자벳’ 공연장과 확연히 달랐다. 박수갈채 사이로 남자들의 우렁찬 환호가 간간이 섞여 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녀 커플은 만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남자들은 e메일을 보내고 나서 인터넷으로 뭘 할까. 야한 동영상에 빠져들겠지.” 무대 위 인형들이 짓궂은 가사를 던질 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남자의 이마에서 또르르 식은땀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2004년 토니상의 고갱이였던 이 작품의 한국 개막은 최근 뮤지컬 업계의 수다거리 중 하나였다. 들리는 이야기는 대개 비관적이었다. “잘될 턱이 없어요.” “이런 걸 수입하다니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게죠.” “예매가 부진해서 벌써 소셜커머스에 싸게 풀렸다던데요?”
27일 만난 이 작품의 기획사인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에게 티켓 판매 현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짤막한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저도 흥행은 기대하지 않아요. 그저 ‘이런 뮤지컬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8일 인터넷 티켓판매대행사 인터파크의 판매 순위 표에서 ‘애비뉴Q’는 20위에 랭크됐다. 1위는 ‘맨 로브 라만차’. 그 아래로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맘마미아!’ 같은 익숙한 제목들이 보였다.
3년 뒤쯤 이맘때 다시 순위 표를 봤을 때 낯선 제목을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 ‘메인 고객’ 취향에 맞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뮤지컬업체는 과연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는 걸까. 최근 실내를 새로 단장한 서울 백화점들은 여자화장실만 마련했던 고급품 매장에 다시 남자화장실을 만들었다. ‘애비뉴Q’ 마지막 노래 가사처럼 “세상 모든 건 잠시뿐”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