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에세이버트런드 러셀 지음·장성주 옮김/376쪽·1만7000원/함께읽는책
“나는 앞서 발표한 책 ‘인간의 지식’ 서문에서 내가 전문 철학자들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철학은 본디 지식층 일반의 관심사를 다룬다’라고 적었다. 서평가들은 이 말을 빌미로 나를 꾸짖었다. 그들이 보기에 내 책에는 어려운 내용이 일부 들어 있는데 저런 말로 독자들을 속여 책을 사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난을 또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고백하건대 이 책에는 보기 드물게 멍청한 열 살배기 아이라면 좀 어렵게 느낄 만한 문장이 몇 군데 들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다음의 에세이들이 인기를 끌 만한 글이라고 하기는 힘들 듯싶다. 그렇다면 ‘인기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밖에.”
이 에세이집은 러셀의 인생 절정기에 발표됐다. 최고 명문가 출신의 천재 철학자로 각광받던 러셀은 평화주의에 입각해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하다가 반역자로 몰려 미국으로 자발적 망명을 떠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대한 혐오로 영국의 참전을 지지했고 1944년 72세의 나이로 케임브리지로 금의환향한 러셀은 그의 책 중 가장 많은 인세를 벌어다 준 ‘서양철학사’(1945년)를 발표하면서 전후 가장 저명한 영미권 지식인이 된다. 이 책이 발표된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