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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달동네의 꿈과 희망? “우리에게는 사치”

입력 | 2013-08-31 03:00:00

쓰레기 차지하려 칼부림하는 아이들, 르포처럼 생생한 인도 빈민촌 이야기
◇안나와디의 아이들/캐서린 부 지음·강수정 옮김/388쪽·1만6000원/반비




인도 뭄바이 안나와디 빈민촌의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언제나 표정이 밝아진다. 어쩌면 비루한 삶에서 가끔 마주치는 바깥사람들이 그들에겐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미소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만 되면 생존을 위해 일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 반비 제공 ⓒunnati tripathi

인도 뭄바이 빈민촌 하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꽤 있다. 인도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소설 ‘Q&A’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난해도 꿈을 잃지 않는 하층민 젊은이의 삶을 맛깔 나게 풀어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그런 흥취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뜬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내려치는 듯한 책이다. 웃기지 마라. 낭만? 희망? 노숙이나 다름없는 움막에 살면서 밤이면 쥐한테 물어뜯기고, 또 그 쥐를 잡아먹으며 쓰레기를 줍는 인생에 과연 그런 여유가 끼어들 틈이 있을까. 11세 어린애가 당장 내일의 끼니는 고사하고 오늘의 생존도 장담하지 못하는 땅. 그곳이 인도 빈민촌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를 거쳐 현재 뉴요커 기자로 재직하는 저자가 4년 동안 밀착 취재했다는 뭄바이 빈민촌 안나와디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못해 두렵다. 안나와디는 뭄바이의 수많은 빈민촌 가운데 사하르 공항(공식 명칭은 차트라파티시바지 국제공항) 인근에 형성된 곳. 1991년 공항도로 건설에 동원됐던 지방 노동자들이 터를 닦아 현재 3000명 정도가 산다. 그 가운데 정규 직장을 가진 이는 겨우 6명. 대다수는 공항에서 배출하는 폐품을 수거하거나 오염된 폐수에서 건진 물고기를 잡아 삶을 연명한다.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소년 압둘과 수닐에게 인생의 즐거움이란 ‘오늘 하루 얼마나 근사한 쓰레기를 건졌는가’이다. 동네 아이들이 가져온 쓰레기를 매입해 넘기는 중개상쯤에 해당하는 압둘은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일한다. 자신의 노동이 철모르는 동생들은 물론이고 무능력한 부모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압둘은 푼돈이나마 저축할 수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낫다. 경찰과 공항 관리요원에게 매를 맞는 건 다반사이고, 쓰레기를 차지하려 칼부림까지 벌이는 경쟁을 매일 겪어야 하는 수닐에게 삶은 지옥과 같은 말이다. 다행히 둘은 예외라지만, 또래들이 그 참혹과 허기를 잊으려고 버려진 수정액으로 만든 화학찌꺼기를 마약처럼 흡입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보면 이게 진실일까 자꾸만 의심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참혹할 수 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꿈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식의 긍정적인 요소는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저자가 오랫동안 공들인 취재기를 르포 형식이 아닌 소설처럼 썼기 때문에 더 감정이입이 큰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꾸며진 얘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생긴다.

저자는 흔히 ‘달동네’ 하면 가난해도 서로 돕고 의지하는 인정 넘치는 풍경을 떠올리는 고정관념마저 깨부순다. 가난의 극에 다다른 이들에게 그건 사치고 낭비다. 오늘 좁쌀만 한 여유가 생겼다고 내일도 그럴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끊임없는 악다구니를 건네며 서로를 물어뜯고 생채기내는 건 벽을 맞댄 이웃들이다. 빈민촌 주민들은 보잘것없는 이권이라도 생기면 그걸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다. 수십 년을 보아온 이웃사촌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악착같이 뜯어낸다. 그래야 이 지옥에서 상대를 밟고 짓이긴 뒤 자기라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착각하면서.

더 암울한 건 딱히 빈민촌과는 상관없어 보이던 ‘세계화’나 ‘서구 경기침체’가 이들에게 직격탄을 먹였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불황은 인도의 성장둔화로 이어졌고, 고철이나 폐품 가격의 폭락을 불러왔다. 또 돈벌이가 시급해진 대기업마저 재활용사업에 뛰어들며 그들의 먹고살 양식을 앗아갔다. 게다가 인도 경제를 책임져야 할 뭄바이는 해외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도시정비사업에 나서 빈민촌을 밀어버리려 한다. 세상은 그들에게 그 거지같은 잠자리마저 허락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자꾸만 한숨이 흘러나온다. 초반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돕지는 못할망정 그저 지켜만 보는 저자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낄 수 있다. 아, 이게 한두 사람 챙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이걸 도대체 어떡해야 할까. 왠지 이 무력감, 오래갈 것 같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