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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청춘의 특권, SNS 그물에 갇히다

입력 | 2013-08-31 03:00:00

장기불황 속 日 젊은이들 구직 몸부림… 디지털세대의 그림자 폭로
◇누구/아사이 료 지음/권남희 옮김/307쪽·1만3000원/은행나무




일본 나오키문학상 수상작 ‘누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생각을 직접 얘기하지 못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스마트세대의 왜소한 모습을 그렸다. 동아일보DB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찾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부터 검색하는가? 어제 본 영화에 대한 내 감상평에 ‘좋아요’는 몇 개나 달렸고 리트윗은 몇 번이나 됐는지, 휴가지에서 찍어 올린 이국적인 사진에 맞장구나 부러움 섞인 댓글은 몇 개나 달렸는지 습관적으로 확인하는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불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쉽게 눈을 떼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 도쿄 소재 한 대학의 졸업반인 다쿠토. 그는 동갑내기 하우스메이트 고타로가 학내 록 밴드 활동을 접고 장발의 염색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바꾸는 걸 보며 취업시즌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고타로의 여자친구 미즈키, 그녀와 함께 미국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리카까지 네 명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앞두고 취업 스터디 모임을 만든다. 하지만 거듭되는 낙방과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견제와 의식 속에 이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줄거리만으로는 20대 감성의 전형적인 ‘청춘소설’ 같지만 작가는 이 속에 정보통신혁명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왜소함과 허세, 자기기만 같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능숙하게 버무려냈다. 소설의 첫 장을 아예 등장인물의 트위터 프로필로 시작한다거나 트위터나 블로그에 오른 게시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일견 낯설게 보이는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은 SNS가 곧 내 얼굴이자 정체성이 된 우리네 현실이 반영돼 있다.

소설 속에 그려진 청춘들은 하루 24시간 트위터와 페이스북, e메일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어쩐지 더 파편화돼 있고 외로워 보인다. 누군가(입사 희망 회사)에게 거절당하는 익숙지 않은 경험이 반복되고, 변변치 않은 자신을 세상 앞에 한껏 부풀려 내놔야 하는 현실은 이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리카는 서류전형과 적성검사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트위터에는 “다음 면접부터는 말을 천천히 해야겠다”는 허세를 부리고, 리카의 동거남 다카요시는 SNS에 스스로를 ‘취업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쓰면서도 실제로는 입사 시험장에 남들 눈에 안 띄게 한 시간 먼저 입실해 시험을 본다. 트위터상으론 유쾌하기만 한 고타로도 방송국 입사 시험을 보면서 탈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담력 테스트 삼아 (한번) 쳐보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아예 대학을 중퇴하고 연극판을 기웃대며 자기의 블로그를 통해 어설픈 인맥 자랑에만 바쁜 다쿠토의 친구 긴지 같은 인물도 스쳐 지나간다.

아사이 료

작가는 이런 친구들을 바라보는 주인공 다쿠토의 입을 빌려 이들 ‘스마트 세대’나 ‘디지털 노마드’의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폭로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을 가볍게 발산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점점 그 속에 묻고 숨긴다.”(161쪽) SNS를 타고 오가는 알맹이 없는 다짐과 의례적인 응원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아무것도 형태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의 노력만 어필할 때가 아니다. …진짜 ‘파이팅’은 인터넷이나 SNS 어디에도 굴러다니지 않는다. 바로바로 서는 전철 안에서, 너무 센 2월의 난방 속에서 툭 굴러떨어진 것이다.”(127쪽) 작가는 청춘의 특권인 꿈과 이상도 현실에 두 다리를 단단히 뿌리박고 있지 않으면 꽃피울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소설로 올해 일본 나오키문학상 최연소(24세) 수상의 기록을 세웠지만 소설 속 청춘들처럼 치열한 구직활동을 거쳐 현재 한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은 설득력을 더한다.

미즈키와 고타로가 차례로 통신회사와 출판사에 합격하면서 인물들 사이의 균열은 봉합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해를 넘겨 취업 재수생이 된 리카는 미즈키의 입사 축하 파티에서조차 비정규직 입사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쿠토 역시 고타로가 입사한 출판사에 대한 나쁜 평판을 인터넷에서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주인공 다쿠토가 ‘누구’라는 이름으로 비밀 트위터 계정을 운영해 온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의 가슴은 서늘해진다.

동일본 대지진과 경제 불황의 여파로 가뜩이나 팍팍해진 일본을 살아가는 20대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지만 높은 청년 실업률로 신음하는 한국의 현실을 대입해도 몰입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을 갖췄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현재 쓰고 있는 모든 SNS 계정을 당장 닫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