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속 日 젊은이들 구직 몸부림… 디지털세대의 그림자 폭로◇누구/아사이 료 지음/권남희 옮김/307쪽·1만3000원/은행나무
일본 나오키문학상 수상작 ‘누구’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생각을 직접 얘기하지 못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스마트세대의 왜소한 모습을 그렸다. 동아일보DB
일본 도쿄 소재 한 대학의 졸업반인 다쿠토. 그는 동갑내기 하우스메이트 고타로가 학내 록 밴드 활동을 접고 장발의 염색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바꾸는 걸 보며 취업시즌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고타로의 여자친구 미즈키, 그녀와 함께 미국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리카까지 네 명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앞두고 취업 스터디 모임을 만든다. 하지만 거듭되는 낙방과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견제와 의식 속에 이들의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리카는 서류전형과 적성검사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트위터에는 “다음 면접부터는 말을 천천히 해야겠다”는 허세를 부리고, 리카의 동거남 다카요시는 SNS에 스스로를 ‘취업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쓰면서도 실제로는 입사 시험장에 남들 눈에 안 띄게 한 시간 먼저 입실해 시험을 본다. 트위터상으론 유쾌하기만 한 고타로도 방송국 입사 시험을 보면서 탈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담력 테스트 삼아 (한번) 쳐보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아예 대학을 중퇴하고 연극판을 기웃대며 자기의 블로그를 통해 어설픈 인맥 자랑에만 바쁜 다쿠토의 친구 긴지 같은 인물도 스쳐 지나간다.
아사이 료
미즈키와 고타로가 차례로 통신회사와 출판사에 합격하면서 인물들 사이의 균열은 봉합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해를 넘겨 취업 재수생이 된 리카는 미즈키의 입사 축하 파티에서조차 비정규직 입사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쿠토 역시 고타로가 입사한 출판사에 대한 나쁜 평판을 인터넷에서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주인공 다쿠토가 ‘누구’라는 이름으로 비밀 트위터 계정을 운영해 온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의 가슴은 서늘해진다.
동일본 대지진과 경제 불황의 여파로 가뜩이나 팍팍해진 일본을 살아가는 20대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지만 높은 청년 실업률로 신음하는 한국의 현실을 대입해도 몰입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을 갖췄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현재 쓰고 있는 모든 SNS 계정을 당장 닫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