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역도연맹의 실정을 견디지 못한 역도대표팀 지도자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역도남자대표팀 이형근(사진) 감독이 1일 사표를 내고 2일 대표팀을 떠난다.스포츠동아DB
■ 남대표팀 이형근 감독 사표…한국역도 위기
女대표팀 김기웅 감독도 이미 해고통보
코치급 지도자들도 조만간 사표낼 듯
류원기 회장 체제 후 더 열악해진 지원
역도연맹 일방적인 행정도 사퇴 원인
대한역도연맹(회장 류원기)의 실정을 견디다 못한 대표팀 지도자들이 사의를 표명했다. 역도계에서는 대표팀 운영의 파행을 우려하고 있다. 대표팀 총감독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얼룩진 한국 역도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역도관계자는 1일 “남자대표팀 이형근(49) 감독이 연맹에 사표를 냈다. 2일부터 대표팀을 떠난다. 이에 앞서 여자대표팀 김기웅 감독 역시 연맹으로부터 해고 압박을 받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귀띔했다. 이외에 코치급 지도자도 조만간 사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1988서울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이형근 감독은 1996년 11월 코치로서 태릉에 발을 들여놓은 뒤, 17년 간 대표팀을 떠나지 않은 한국 남자 역도의 산 증인이다. 특히 선수들과 역도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지도자로 꼽혔다.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28·제주도청)은 이 감독을 “나의 멘토이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을 정도다.
대표팀 지도자들은 ‘연맹의 지원 부족’과 ‘일방적인 행정’ 등에 회의를 느끼고, 결단을 내렸다. 일부 정상급 선수도 “더 이상 태릉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동요하고 있다. 대표팀이 정상적인 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되는 상황이다.
● 류 회장 체제 이후 줄어든 대표팀 지원
대한역도연맹은 10년 넘게 재정 지원의 부족으로 시름해 왔다. 장미란(30) 등 슈퍼스타들에게 포상금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역도인들은 2013년 1월 연맹 수장으로 취임한 영남제분 류원기(66) 회장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대표팀의 운동여건은 오히려 후퇴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대표팀의 예산은 이전보다 더 줄었다. 촌외로 전지훈련을 가려고 해도 연맹은 ‘돈이 없다’고 한다. 주니어선수들은 국제대회에 자비를 내고 출전하는 실정이다. 좋은 재목들이 많은데, 투자 없이 어떻게 성적을 내겠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류 회장 체제 이후 역도인들은 연맹의 일방적인 행정에 불만이 쌓였다. 강화위원회와 이사회 등,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대표팀 지도자를 선임하는 일도 있었다. 모두 류 회장 등 연맹 수뇌부가 이른바 ‘코드 인사’를 진행하다 무리수가 나온 것이었다. 역도대표팀 오승우 총감독이 성추행 의혹으로 영구 제명된 뒤, 연맹의 사후인선은 대표팀 지도자들의 누적된 불만을 폭발시켰다. 최근 열린 연맹 강화위원회에서 당초 새로운 총감독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은 인물은 A였다. 하지만 연맹 수뇌부는 B심판위원장을 새 총감독으로 임명했다. 이후 여자대표팀 김기웅 감독은 “그만 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대표팀 지도자들은 연이어 사의를 표명했다. 집행부 일부에서도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한역도연맹 안효작 전무이사도 지난주 연맹에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도계에서는 ‘과연 류 회장이 연맹 수장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이른바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허위진단서 작성의 대가로 의사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류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