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스포츠동아DB
소년급제를 조심하라는 옛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돈과 명예 등 너무 많은 것을 이루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경계의 뜻이다.
1989년생인 기성용(사진)은 만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남아공월드컵 주축 멤버가 돼 16강을 이끌었고, 작년 여름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에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로 이적했다. 이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첫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잘 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빼어난 실력을 갖춘 스타 반열에 올랐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했지만 그만큼 추락의 속도도 빨랐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조롱하는 글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여론은 그 때나 지금이나 싸늘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전경쟁에서 밀렸다. 기성용은 올 시즌 스완지시티가 소화한 6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선발 기회를 얻지 못했고, 고심 끝에 선덜랜드 임대를 택했다. 선덜랜드는 1일 오전(한국시간) 기성용의 1년 임대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기성용은 작년 시즌 막판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스완지시티는 기성용에게 “치료를 하다가 시즌 후 귀국하라”고 했지만 기성용은 리그 최종전이 끝나기 전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물론 기성용의 주장도 나름 일리는 있다. 마음 편하고 익숙한 한국에서 회복하는 것이 낫고 빨리 회복해야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유럽 구단이 자유분방해보여도 기본 정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기성용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구단의 말에 따랐어야 했다. 물론 이 문제가 감독과 불화나 임대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성용에게는 ‘감독과 또 마찰을 빚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한 축구감독은 말했다. “선수가 감독과 크게 다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수가 또 다른 감독과 갈등이 생기면? 돌이킬 수 없다. 어떤 감독도 앞으로 그 선수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선덜랜드 임대는 기성용에게 승부수다. 중앙 미드필드 자원이 차고 넘치는 스완지시티에 비해 선덜랜드는 중원이 허술하다.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허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면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또 선덜랜드에서 자리 잡아야만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내년 브라질월드컵 무대를 밟겠다는 기성용의 시나리오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선덜랜드에는 기성용의 대표팀 후배 지동원이 있다. 타국 생활에서 한국인 동료는 큰 힘이 된다. 기성용 역시 스코틀랜드 셀틱 시절 힘들 때 선배 차두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기성용이 지동원을 끌어 주고 챙겨줘야 한다. 서로 의지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